‘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NSBS). 가난한 조선의 버려진 아이들을 등에 업고 살아간 서서평(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의 머리맡에 적혀있던 말이다. 서 선교사는 이 땅에 한국간호협회와 신학대학을 세웠다. 드리미학교는 장차 어떤 직업을 갖든지 서서평 선교사님처럼 NSBS를 실천하는 학생들을 기르는 학교이다. 예수님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고 또 무릇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고 하셨다. 섬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교 이사장인 나부터 섬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돈 많은 이사장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섬기는 것이다. 드리미학교는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학부모의 경제 사정에 맞도록 자율 선택할 수 있게 했다. 5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①수업료(O) 기숙사비(O) ②수업료(50%) 기숙사비(O) ③수업료(X) 기숙사비(O) ④수업료(X) 기숙사비(X) ⑤학생 용돈 지급. 자율에 맡겼지만 절반 정도는 납부가 된다. 못 내는 학부모는 형편이 나아지면 반드시 내겠다며 졸업 후에라도 몇 배로 갚겠다는 다짐의 긴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드리미학교는 현재 연간 수억원 적자 운영 중이다. 이사장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나중에는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섬기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교회는 공동체다. 이상적인 공동체는 경제공동체이며 동시에 교육공동체인 신앙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에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아름다운 경제공동체 얘기가 나온다. 공산주의자들이 실현해 보려고 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변명의 여지 없이 실패한 시도였다. 정통 교단은 시도도 포기하고 있다. 사이비 이단은 시도하지만 나중에 교주가 다 가져간다. 성경적 유무상통과 공산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나의 오랜 고민은 내가 부자가 된 다음에 풀어졌다. 문제의 답은 누가 주도했는가에 있다. 공산주의는 없는 자 즉 노동자와 농민이 주도했다. 부자들의 것을 탈취해서 나누자고 했다.
반면 사도행전의 유무상통은 부자들이 주관해 스스로 내놓았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 유무상통을 주관할 사람은 오직 부자들 곧 나 같은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담임 목사님도 나설 일이 아니다. 사도들이 주관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과 유무상통의 모범을 보이고 우리 학생들의 인생 전체에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 기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하는 기도이다.
유무상통에 관한 나의 소신을 얘기하면 주변에서 “그럼 회장님과 제가 지갑(전대) 하나 놓고 같이 쓰는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다”고 확실하게 대답한다. 못 믿는 표정이지만 너무 좋아한다. 나는 유무상통을 이미 시작했지만 당장에 모든 사람과 실시하기에는 내가 가진 돈이 좀 부족하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한다. 지금은 한 달에 5만원만 있으면 하루에 한 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아이들과 먼저 하고 있다. 내 월급의 절반이 넘는 5000만원이 매월 컴패션 어린이 1000명에게 전달되고 있다. 혹시 지금 한 달에 5만원이 없어서 밥을 굶고 있다면 당장에 나와 유무상통이 가능하다고 얘기하면 모두 밝게 웃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