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계 집단행동이 한 달을 맞았지만 의정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부터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는 동시에 ‘2000명 증원’ 방침을 조정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 생명을 담보로 나선 집단행동은 조정 명분이 될 수 없다고 맞섰다. 의료계 공백 사태가 2000명이라는 의대 증원 숫자 싸움에 묶인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7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20곳 중 16곳이 25일 정부의 의대 증원과 전공의 처분 등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전국비대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재승 서울대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이 손가락질 받으면서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보려는 의지”라면서 “정부가 ‘2000명 증원’을 풀어야 합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에 참여한 20곳 중 나머지 대학 4곳은 이번 주중 의견 수렴을 통해 집단대응 방식을 논의한다. 이미 서울대 교수협의회 비대위 등은 오는 18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상태여서 연대 움직임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2000명’ 규모가 적정하다면 논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며 정부에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를 받는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출석해 “돌아갈 수 있는 퇴로가 없다고 본다”며 “정부가 전향적으로 논의의 장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의협에서 ‘퇴로’라는 표현까지 쓰며 정부에 논의 테이블 마련을 요청한 건 처음이다.
의료계는 정부에 대화와 양보를 요구하면서도 전공의 복귀 요구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비대위는 “사직서 제출이 환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면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진료는 최선을 다해 사직서가 완료되기 전까지 지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수 집단사직서 제출은 증원 규모 조정을 위한 중재 카드라는 뜻이지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내부에서는 야간·주말 진료를 축소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증원 규모 2000명 협상은 절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교수들의 집단사직 예고에 “대단한 겁박”이라며 “절대 조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그만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는 요구를 하고 정부에 대해서도 ‘(증원 규모) 여지를 달라’고 했다면 진정성 있었을 텐데, 이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정부 정책을 무릎 꿇리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