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해외여행이나 공연 등 오락·문화 씀씀이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눌렸던 수요가 터져 나온 데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국가를 찾아 나선 해외여행이 늘어난 영향 등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침체는 여행이나 문화·여가비 축소로 이어진다는 경제 상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단체여행, 스포츠·공연 관람 등 ‘오락 및 문화’ 부문의 지난해 4분기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7% 상승했다. 관련 비용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다만 이 부문에서 국민이 실제 쓴 금액인 소비지출액 상승률은 가격 상승률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오락 및 문화 소비지출액은 2조375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1% 급등했다. 지출액이 물가상승률의 5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고물가 와중에도 오락 및 문화 지출을 대폭 늘린 가장 큰 이유로는 일단 ‘보복 소비’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진정 이후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한 현상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내국인의 해외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64.1%나 폭증했다. 고가의 대규모 내한 공연이나 콘서트 등이 집중적으로 열린 것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 요인이다.
국내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환율 효과로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진 일본이나 동남아로 떠나는 여행 수요도 크게 늘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일본 노선 출입국 인원은 21만509명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분기보다도 4.5% 더 많은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경기 회복 기대감에 오락 및 문화 관련 ‘선지출’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이후 경기 부진이 완화된다는 표현을 매달 내놓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현재 저점을 찍은 상황이라 미래 소비를 당겨쓰는 경향이 관찰된다”고 분석했다.
‘우선 쓰고 보자’는 풍조가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실제 오락 및 문화 지출이 늘어난 반면 저축은 줄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2019년 34.7%였던 저축률은 2021년 36.5%까지 뛰어올랐다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33.3%로 전년(34.1%)보다도 0.8% 포인트나 줄었다.
세종=신준섭 김혜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