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0.70명 선이 무너졌다는 통계청 발표에 둑이 터지듯 한국 안팎에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출산율이 1명 아래라는 건 여성 한 명이 평생 살면서 낳는 아이 수가 평균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이미 세계 최저인데, 한국 홀로 매년 최저치를 스스로 갈아치우고 있다. 통계가 나올 때마다 ‘역대 최저’니 기사를 쓰는 입장에선 더 이상 ‘뉴스(news)’가 아닌 느낌마저 들었다.
정신을 차리게 한 건 한국의 초저출산 독주에 격하게 반응한 외신들이다. 영국 일본 미국 등 주요국 언론이 한국 현상의 원인을 분석했다. 높은 집값과 사교육 문화, 경쟁적인 사회, 장시간 근로시간 등과 함께 공통으로 지적된 건 여성의 현실이었다. 영국 가디언은 ‘워킹맘이 집안일과 육아까지 주로 책임지는 한국적 상황에서 회사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어려움’ 등을 언급했다. 한국인이 직장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데, 특히 여성들은 육아 기간 뒤 경력 단절을 두려워했다는 진단도 있었다. 물론 우리가 다 아는 진단이다. 그런데도 여성이 처한 어려움을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웠다. 언젠가부터 저출산 문제를 다루면서 직접적으로 여성의 상황을 언급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 청년 전반이 느끼는 암울함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공감대가 지배적인데다, 여성 문제를 말하는 게 금기어처럼 돼 버린 분위기 탓도 있다. 그런데 출산율 용어부터가 여성 문제다. 출산율을 높이자는 건 출산 주체인 여성에게 답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여성이 느끼는 문제를 다루지 않고 문제를 풀 길은 없는 셈이다.
인구 축소 상황에 부닥친 한국에서 해결하려는 또 다른 과제도 핵심에 여성이 있다. 당장 부족한 생산가능인구를 채우는 문제다.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 이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0만명대로 둔화할 전망이다. 2032년까지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서는 89만명의 인력이 추가로 투입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부족한 인력을 죄다 외국인으로 채우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장 좋은 대안은 일할 능력이 되는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잘 교육받고 이미 훈련받은 30, 40대 여성 인력의 경력 단절은 국가 경제에선 매우 아까운 손실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여성 경력단절로 인한 고용손실이 135만명에 육박하고, 금액 기준으론 연간 44조원의 손실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이라는 두 과제를 단순화하면 아이를 낳는 등의 이유로 직장을 떠난 30~40 여성에겐 ‘다시 일해주길’, 현재부터 앞으로의 출산율을 담당할 청년 여성 등에겐 ‘아이를 낳길’ 바라는 것이다. 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고 따지자는 게 아니다. 여성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물론 아니다. 다만 적어도 사회가 여성의 선택 변화를 원한다면 그만큼 사회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글로벌 회계·컨설팅 네트워크 PwC가 발표한 여성고용평가지수에서 한국은 5년 연속 OECD 국가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여성 경제활동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여성 권익이 향상되는 초기 단계엔 여성의 경제사회 활동이 많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우리 사회는 그 지점에 멈춰있다. 여성에게 답을 원한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충분히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재인식하는 것부터 필요할 것이다.
조민영 경제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