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이재명이 말하는 주류교체란?

입력 2024-03-18 04:07

'친문당→친명당' 변화에
적응한 경우만 공천 받아…
4년 후에도 '친명' 유지할까

문재인정부 청와대에 있었던 한 원외 친명(친이재명) 인사는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지역화폐 문제로 청와대 사람들을 엄청 만나고 싶어 했는데 아무도 안 만나줘서 나라도 만나고는 했다”고 이 대표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당시 비주류였던 이 대표가 문재인정부로부터 받은 멸시에 관한 작은 일화 중 하나였는데, 이 인사는 이번 4·10 총선에서 이 대표의 엄호 속에 공천을 받았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일 때 청와대에선 임종석·노영민이 대통령비서실장을 하고 있었고, 청와대 사람은 아니지만 지방자치단체 현안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에선 전해철 의원이 장관이었다. 꼭 이 이유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임 전 실장은 경선도 못 치르고 컷오프됐고, 노 전 실장과 전 의원은 원외 친명의 ‘킬러공천’으로 인해 경선에서 주저앉았다.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뒤덮은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가 4년 만인 2024년에 ‘친명횡재·비명횡사’로 바뀌었다.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면서 ‘이재명표 공천’에 불만을 쏟아냈던 고민정 의원도 4년 전엔 “청와대 대변인 경력 하나로 전략공천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친문 패권주의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에 고 의원이 공천 문제에 저항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단수공천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명횡사’라는 비난에 대해 이 대표 측은 “당 주류가 교체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친문들이 과거 동교동계를 밀어냈듯이 이번에도 그런 시대의 변화가 당에 반영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실제 친문 다수가 숙청됐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성적표를 받은 건 아니다. 개중에는 전략 내지 단수공천을 받은 사람도 꽤 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일찌감치 친명으로 전향했거나 이 대표에게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문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을 한 전현희 전 의원의 경우 윤석열정부가 들어서고도 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임기를 채웠는데, 당에 오자마자 최일선에서 윤정부와 싸우는 ‘여전사’가 되면서 “권익위원장 때 냈던 결과물들의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전 전 의원은 당초 출마를 준비했던 서울 종로보다 비교적 수월한 중·성동갑에 전략공천됐다.

문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몸값을 한껏 띄워주는 바람에 ‘보수의 어머니’라 불린 추미애 전 장관은 임 전 실장이 직격탄을 맞은 ‘윤석열 정권 출범 책임론’에서 비껴갔다. 추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차이에 대해 민주당 인사들은 “추 전 장관이 친명이 된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 ‘문재인 복심’ 윤건영 의원을 비롯해 문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다수의 의원은 이 대표 체제에서 숨죽인 채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문정부 원내대표’ 홍영표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장에서 친문 의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천 작업이 본격화되기 전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몇 명만 살려놓는 식으로 갈라치기 할 것”이라 말했는데, 지금 보면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혔다. “이 대표로선 밀어붙여도 될 것 같으니 밀어붙인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칼자루를 쥔 이 대표가 단연 우위였지만 자기 살길 찾느라 바쁜 친문이 뿔뿔이 흩어져 힘을 못 쓴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친문당’에서 ‘친명당’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누군가는 빠르게 갈아타서 주류가 돼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이 변화를 거부하다가 비주류로 낙천됐다.

전례 없는 공천 갈등에도 민주당은 ‘153석+α’를 자신했다. ‘친문 패권주의’도 21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4년 만에 무너졌다. 22대 국회에 들어올 ‘원외 찐명’이나 ‘친명 호소인’들이 4년 뒤에도 친명일진 알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대표도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시스템 공천’에 의한 ‘주류 교체’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김영선 정치부 기자 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