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빈(27)씨는 자립준비청년 사이에서 유명인사다. 자립준비청년 출신인 박씨는 2022년 인기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해 홀로서기의 고충을 알렸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봉앤설 이니셔티브’라는 회사에서 자립준비청년을 포함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그란데클립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과 제도는 크게 늘었다”며 “이제는 그 기반을 바탕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을 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서적 지원’ 가장 절실
1998년생인 박씨는 만 3세였던 2001년 보육원에 맡겨졌다. 누나 두 명, 동생 한 명과 함께였다. 박씨의 당시 입소 사유서에는 ‘부모 이혼·가정 빈곤’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씨는 초등학생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그에게 식사는 식판에 받아서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친구 가족의 식사 자리에선 반찬이 각각의 접시에 담겨 나왔다. 그날 자신이 친구들과 다른 처지에 있음을 깨달았다.
박씨는 2017년 보호종료 이후 너무 달라진 환경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늘 옆에 친구들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시설과 달리 보호종료 후 혼자 있게 되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울감이 밀려오곤 했다”고 회상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공공, 민간의 지원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박씨가 겪었던 ‘정서적 빈 공간’을 채워주는 일이다.
그는 운 좋게도 ‘멘토’라 할 수 있는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대기업 인턴십 과정에서 알게 된 상사는 휴일에 종종 ‘밥 먹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직접 차를 몰고 와서 박씨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박씨는 “통상 주말에 무엇을 할지 몰라서 회사에 나와 일만 했었다”며 “되돌아보니 그 상사가 일상적인 케어(돌봄)를 많이 해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 IT업체에서 팀장 선배를 만난 후 본격적인 멘토링 활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표준 사업장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업체였다. 시각장애인이던 선배는 “같은 시각장애인이라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코딩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씨에게 우선순위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팀장의 한마디로 그는 ‘나와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때부터 자립준비를 앞둔 친구들을 위한 강연, 멘토링 활동을 계획하게 됐다.
멘토 자원, 효과적 활용법 고민해야
좋은 멘토를 만났던 박씨와 달리 대다수는 좋은 어른들을 만나지 못한다. 박씨는 이런 측면에서 멘토링 사업 확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다만 이제는 멘토링의 방식을 다양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씨는 “사회적 자원이 많아진 만큼 이제는 활용도를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멘티가 유년기 때부터 멘토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꼭 매일 연락하지 않더라도 멘토가 있으면 자립준비청년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씨는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일대일 멘토뿐 아니라 각 분야의 직장인으로 구성된 멘토집단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자립준비청년들이 필요할 때 부담 없이 이용하는 멘토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멘토 교육도 개인 맞춤형·체험형이 좋다. ‘집 구하기’가 가장 좋은 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시설 퇴소 이후 처음 맞이하는 난관은 스스로 살 집을 찾는 것이다. 박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정착금 300만원으로 열악한 월세방을 구해 살았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혜택이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뒤에야 관련 지원 제도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박씨는 “시설 퇴소 상황을 가정하고 멘토와 함께 집 구하는 과정을 실제처럼 하나하나 같이 해보는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며 “마이홈(LH 주거복지포털)에 직접 들어가서 가입도 해보고, 본인의 요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임대주택이 무엇인지, 또 전세대출 한도는 얼마인지 이런 경험을 사전에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감 형성 ‘풀뿌리’ 커뮤니티 필요
시설 퇴소 직후 취업했던 박씨는 퇴근 이후나 주말 등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때 자립준비청년들끼리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자립준비청년의 특성상 익명이 담보된 상태에서 힘든 마음을 털어내는 모임이 절실하다. 또 자립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도 있어야 한다.
현재 아동권리보장원은 ‘자립정보온’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은 실명제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처럼 큰 덩어리의 커뮤니티는 공공에서 운영하는 게 맞는다”면서도 보다 접근이 가벼운 일종의 ‘온라인 광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메신저든 포털 커뮤니티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며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풀뿌리’ 커뮤니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