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교사가 러시아에서 체포돼 구치소에 구금됐다. 백모씨로 알려진 이 선교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탈북민 구출 및 북한 파견 노동자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백 선교사가 6~7년 전 동북 3성 일대의 한국인 선교사가 중국 당국에 의해 대거 추방될 때 러시아로 건너가 인도적 활동을 벌여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일급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고, 스탈린 시대 정치범 수용소였던 모스크바의 악명 높은 구치소에 수감됐다니 의아할 뿐이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잘 있는지 걱정이다. 정부는 백 선교사의 신변 안전과 조기 석방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외교관, 언론인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경고의 사인을 보내거나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적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간첩 협의로 기소되는 등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미국·유럽의 경제제재 속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그런 점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해 발생한 본토와 해외기지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오랜 전쟁으로 부족해진 탄약과 미사일 등을 북한과 거래하면서 새로운 밀월 관계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적 활동을 하는 선교사를 체포했으니 단순한 간첩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인질 외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러시아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강력히대처해야 한다. 러시아가 백 선교사 체포 사실을 우리 정부에 알린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국영통신사에서 관련 기사가 비교적 상세하게 게재된 배경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 두나이항을 오가는 컨테이너선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경고하는 수준인지,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 기조 자체에 불만을 드러낸 것인지 정확한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대로라면 백 선교사는 기소돼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악화된 한·러 관계가 더욱 나빠지고, 우리 교민과 기업에 피해가 갈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러시아와의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러시아를 상대로 치밀한 외교적 교섭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