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예고한 다음날인 12일 서울대 운영 병원들은 하나같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환자들은 전공의에 이어 교수까지 사직하면 의료체계가 마비되는 것 아니냐며 의료 공백을 걱정했다. 반면 교수들은 의료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며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사직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문현남(72)씨는 “의사들이 환자를 담보로 본인의 권익을 챙기는 건 아주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3개월 뒤 병원 비뇨기과에서 수술이 잡혀 있는데, 예정대로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신장 이식을 받은 뒤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는다는 김용현(58)씨도 “이식 환자들은 병원 진료가 어려워지면 큰일난다. 정부든 의사든 누구라도 이제는 사태를 끝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전공의에 이어 교수까지 사직하는 사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신장이식 수술 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아 온 50대 이모씨는 “지방에서는 진료할 수 없어 서울까지 와야 하고, 신장 진료 특성상 약도 자주 바꿔야 한다”며 “전공의 사직까지는 그렇다 쳐도 교수까지 그만두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를 위해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왔다.
암 수술을 받은 모친의 진료를 위해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을 찾은 50대 김모씨도 “환자들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다. 교수마저 그만두면 중증 환자들은 그냥 죽으라는 거냐”고 비판했다. 보라매병원은 서울대병원에서 운영하는 시립병원이다.
간호사들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는 “서울대 의대 교수는 명예직 성격이 강해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다른 의사들과 똑같다는 점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보라매병원에서 일하는 5년 차 간호사 A씨도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빠른 치료가 필요한 암 환자들은 더 위험해진다”고 우려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장이다. 보라매병원의 한 교수는 “언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할지 모르니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고 있다. 정부 때문에 전공의가 나갔는데 무작정 돌아오라고 다그치면 해결이 되겠느냐”며 “저도 4일째 집에 못 가고 병원에 있다. 우리도 한계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병원 소속 한 전임의도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사직은 마지막 보루”라며 “병원을 지키는 교수들의 사직은 우리나라 의료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