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를 시스템이라 한다. 그 하나가 작은 소우주이고 완결체적 성격을 띤다. 그 안에선 정해진 규칙대로 돌아가기에 외부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만큼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적어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건 그만큼 선진적 체계를 갖췄음을 의미한다.
정치권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나오는 말이 ‘시스템 공천’이다. 사전에 정한 룰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천이 이뤄졌다는 걸 강조할 때 이 말을 내세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오래전 만들어진 시스템 공천에 따른 결과”라고 반박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쇄신이 없어 공천 잡음도 안 들린다는 지적에 “조용한 공천은 시스템 공천에 승복한 결과”라고 맞받았다. 하지만 말이 좋아 시스템이지 민주당은 ‘호위무사 선발 시스템’, 국민의힘은 ‘현역·중진 불패 시스템’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황당한 시스템 공천의 대미는 11일 민주당의 서울 강북을 경선 결과가 장식했다. ‘유치원 3법’ 등으로 국민들한테 박수를 받아온 박용진 의원이 탈락하고, 막말로 여러 번 논란을 일으킨 정봉주 전 의원이 공천된 것이다. 의정 활동이 뛰어난 박 의원이 현역 하위 10%로 평가받은 것부터 이상하다 싶었더니 불과 2개월 전 강북을에 나타난 정 전 의원이 지역구 활동도 열심히 해온 박 의원을 이겨버렸다. 정말 기가 막힌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결과를 내는 시스템은 고장난 시스템일 뿐이다. 국민들 뇌리엔 시스템 공천이 ‘보이지 않는 손’을 배제하는 투명한 시스템이 아닌 어떤 결과든 원하는 대로 빚어낼 수 있는 ‘만능키 시스템’ 또는 ‘주물럭 시스템’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치 민주주의가 없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임을 내세우듯, 반칙을 막아낼 그 어떤 장치도 없으면서 시스템이란 말만 갖다붙인 게 지금의 시스템 공천 제도라는 걸 실감했을 것 같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