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75% “8촌 이내 혼인 금지해야”… 현행유지 여론

입력 2024-03-12 00:04

정부가 친족 간 혼인금지 범위를 축소할지를 놓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국민 4명 중 3명은 현행대로 ‘8촌 이내 혼인 금지’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각계 의견을 경청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3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근친혼 금지 범위’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현행과 같은 8촌 이내’를 꼽았다고 11일 밝혔다. ‘6촌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15%, ‘4촌 이내’는 5%로 조사됐다. 현행 근친혼 금지 조항이 혼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74%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24%에 그쳤다.

이번 논란은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근친혼 금지 범위를 기존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받은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10월 ‘8촌 이내 혼인은 무효로 한다’는 민법 815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법 개정을 전제로 존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법 개정 시한인 올해 연말까지 개정안을 내야 한다. 사건 당사자인 A씨는 미국에서 6촌 관계였던 남편 B씨와 결혼했고, 귀국 후 한국에서 혼인신고도 했다. 하지만 이후 변심한 B씨는 “현행법상 결혼은 무효”라며 A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냈다. A씨는 2018년 관련 조항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근친혼 금지 범위 축소를 찬성하는 쪽은 혼인 상대를 선택할 자유를, 반대하는 쪽은 가족제도와 사회질서 파괴 우려를 강조한다.

연구용역을 맡은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고서에서 “5촌 이상 혈족과 정기적으로 만나 가족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 개인의 혼인할 자유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은 헌법상 요구”라고 주장했다. 5촌 이상부터는 근친혼 시 유의미한 유전적 질환 발병률 상승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근거로 들었다. 국제사회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근친혼 금지범위가 확연히 좁은 편이라고도 설명했다.

반면 성균관과 전국 유림은 “가족 파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주부터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근친혼 범위 축소 없이도 헌재 결정 취지대로 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재는 민법 815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에도 ‘8촌 이내 혼인을 금지한다’는 민법 809조 1항 자체는 합헌 결정했다. 8촌 이내 결혼 금지는 옳지만, 이미 한 결혼까지 일률적으로 무효로 만드는 건 과하다는 취지다.

이런 취지를 감안하면 혼인 무효 조항을 혼인 취소로 변경하는 방안 등도 가능하다. 혼인 무효는 혼인이 없던 것으로 간주돼 자녀는 혼외자가 되고 상속도 무효가 되지만 혼인 취소는 상속·재산분할 등이 가능해 당사자나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장할 수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