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70), 김주호(75), 김진열(72), 서용선(73). 이들 4명의 미술 작가는 70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이들은 모두 1990년대, 그러니까 40∼50대 중장년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창작열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70대에 자기 세계를 구축한 ‘미술계 어른’이라는 점이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이 이들 4명 작가를 초대한 전시 ‘용’을 진행하고 있다. 용은 용 용(龍), 쓸 용(用), 용기 용(勇)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김을은 보석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로 전향해 1990년대 중반부터 자화상과 가족사를 소재로 그린 ‘혈류도’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펙터클 만능의 시대라 그림일기, 공작일기로 불리는 작은 크기의 그림과 조각 등은 심지 굳은 작가로서의 김을을 새삼 돋보이게 한다.
김주호는 미술교사를 하다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1990년대에 가족을 이끌고 강화도로 들어갔다. 테라코타로 제작한 해학적인 인물 작품이 브랜드가 됐다.
디자인을 전공한 김진열은 일간지 편집국에서 근무하다 상지대 디자인 전공 교수가 됐다. 순수미술에 대한 열정이 가라앉지 않자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조기 퇴직했다. 폐자재를 활용해 만든 입간판 형식의 부조 회화에 그려진 붓 터치에서는 서민의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서용선은 맘껏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정년을 10년 앞둔 시점에서 서울대 미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후 양평의 작업실에서 폭포수 같은 에너지로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도시풍경, 역사화, 자화상 연작을 특유의 거친 선의 맛, 원색의 색감을 살려 표현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종영미술관 박춘호 학예실장은 “김종영 선생은 ‘유희삼매’라는 글에서 작가의 본령을 지키기 위해서 새삼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걸 강조했다”며 “불안에 떠는 청년 작가들에게 작가의 길이 무엇인지 이들 어른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24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