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나서서 정부와 협의하고, 그 다음 전공의 설득해야”

입력 2024-03-12 04:09

전공의 집단행동이 4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복귀 대신 침묵하고 있다. 비상진료체제로 당장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모두가 사태 해결을 위한 ‘의정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논의 테이블 구성과 협의 내용을 두고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 국민일보가 11일 인터뷰한 의학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의대 교수들이 먼저 균형감 있는 대화 테이블을 구성해 정부와 논의를 시작하고, 그다음에 전공의들을 설득하자고 했다. 특히 정부가 내세운 의료 개혁의 가장 큰 명분은 ‘국민 보건 의료’에 있기 때문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한상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부원장은 우선 중재자들이 나서서 전공의와 정부의 대화 여지를 만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의학한림원은 의학 분야 국내 최고 석학 단체다. 한 부원장은 “전공의들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대화를 위한 기본적인 사안을 논의하고 이후 ‘환자 곁으로 돌아와서 단계적으로 생각하자’는 믿음을 주면 학생과 전공의들을 설득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개원의 중심이기 때문에 필수의료 정책이나 전공의 처우 개선 등을 논의할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의료계에 협의체를 구성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의료계에서는 의대교수협의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대한의학회,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의학한림원 등이 중재자 그룹으로 거론된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도 전공의만 대화에 나설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는 전국 공공의료 중추인 지방의료원으로 구성된 단체다.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선봉에 섰고,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후 지방의료원들이 진료시간을 연장해 비상진료 대책 대응에 나서고 있다.

조 회장은 “이 사태를 잘 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교수들을 접촉해 설득한 뒤 전공의를 들어오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는 ‘힘들다’고 하면서 의사 수를 늘리는 건 싫다고 한다. 정부가 근로조건을 개선해주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메아리도 없다”며 “결국 교수들이 전공의들을 맨투맨으로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의대 교수들이 대화에 함께 참여하되 전공의가 주도해 참여해야 한다고 봤다. 권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파업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대화에 직접 참여하고, 교수나 개원의들이 옆에서 보조 참가자로 참여해줘야 한다”며 “정부도 전공의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경청할 필요도 있다. 또 정부 정책을 모두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설명해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화가 이뤄지려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이 단체행동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전공의들은 ‘집단행동이 아니고 개인의 사직이다’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하는데, 결국 집단행동이라는 걸 인정해야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그걸 인정하지 않고는 중재할 대상이 없다. 전공의 대표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패닉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대화 주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부원장은 “필수의료 대책 로드맵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보지만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느냐”며 “특히 숫자(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정부가 협의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료계 원로와 교수들은 증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며 “하지만 규모는 대학 수요조사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정하는 게 맞는데 정부가 의사들에게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다 보니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의학한림원은 350~500명 증원을 주장한다.

조 회장은 의대 증원 규모 자체가 논제가 돼선 안 된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우리 2000명은 포기할 테니 의사들은 몇 명을 원하나요’라고 나오면 모든 의료 개혁이 도루묵이 될 것”이라며 “의사 증원 규모가 문제라면 거기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서 대학이 교육 여건을 만들도록 해주고 대학병원도 전공의를 값싼 인력으로 부리지 말고 제대로 된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도 “만약 (2000명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정도라고 한다면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인증을 통해 교육의 질을 담보하면 된다”며 “정원이 갑자기 늘어 교육의 품질을 맞추지 못한다면 인증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하고, 인증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대학은 폐교해야 한다. 그 대학을 졸업한 의대생은 국가고시 응시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의료계에 부여된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 모두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 정지’ 등 행정 처분과 형사 처벌을 앞세우는 것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조 회장은 “무조건 혼내는 것도 문제지만 떼를 쓴다고 그걸 다 들어주는 것도 문제”라며 “전공의를 협박할 게 아니라 수련생으로서의 지위를 주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준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계속 ‘돌아오라’고 하면서 선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부각되지 않다 보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원장은 “지금과 같은 강압적인 정부 대책과 대응은 학생과 전공의를 자극하기만 할 뿐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교수들의 사직 사태까지 맞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교수와 정부 간 협의가 시작되고, 이 과정에 학생과 전공의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