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40만 계좌에 19조원어치가 팔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예상 투자손실 6조원에 대해 분쟁조정기준을 어제 마련했다. 금감원은 평균 배상비율을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의 20∼80%보다는 하락한 20~60%로 예상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으로 판매 규제가 엄격해져 불완전 판매 정도가 약해진 데다 소비자 책임도 있는 만큼 판매사와 투자자 양쪽 요인을 고려한 차등 배상 원칙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개월간의 현장·민원 검사 결과를 보면 은행들의 영업은 소비자 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약탈적 행태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금융지식이 부족한 노인에게 가입을 권하거나 안정성향 투자자에게 투자성향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행태는 DLF 판매 때와 다르지 않다.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고 고객 설명서 기재 손실 위험을 축소하는 행위는 문서위조에 가깝다. 이는 100% 배상률을 적용할 수 있는 사기계약과 같다. 이익에만 눈먼 은행에 과연 돈을 맡겨도 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금융 당국의 책임도 묵과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DLF 사태 대책으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은행들 로비에 굴복해 홍콩 H지수 등의 공모형 ELS 판매를 허용했다가 사태가 재발한 것이다. 평소엔 적발하지 못했다가 사태 발생 뒤에 위반사항을 잘 찾아내는 건 당국의 나태함을 방증한다. 이렇게 불완전판매에 대한 사전 감독 소홀의 문제가 있는 당국이 공정하게 배상기준을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몇 가지 기준은 벌써 논란을 예고한다. 고령의 투자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상률이 높다거나 가입 금액이 5000만원이 넘고 과거에 이익을 봤다는 이유로 감점을 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예·적금 가입 방문’ 여부 판별 기준도 모호하다. 기준 마련이 자율 합의 촉진 차원이라지만 기관 제재와 연계시킨다는 방침이어서 강제성을 띈다. 배임 논란과 함께 소송 대란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번 대책이 총선용 미봉책이나 당국의 감독 부실 책임 회피용이 아니길 바란다. 은행의 고위험 상품허가 여부까지 포함해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