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최고의 엘리트들이 내린 최악의 결정으로 비판받는 사건들이다. 1961년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 반공 게릴라들을 피그만에 상륙시킨 미국의 공작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최고 강대국의 최상위 엘리트들이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을 했을까.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1972년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똑똑한 개인도 집단으로 뭉치면 얼마든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최고 엘리트인 의사들이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사직한 지 3주째다. 전공의는 병원을 비웠고, 개원의 중심인 대한의사협회는 ‘잘한다’ 맞장구를 쳐준다. 집단휴학한 의대생들을 말려야 할 의대 교수들까지 가세했다. 한 직역이 이렇게까지 아래위로 일사불란하게 뭉친 것을 본 적이 없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그들 말대로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한 엘리트들의 현명한 결정일까, 아니면 또 다른 집단사고의 결과일까. 재니스는 집단사고에는 8가지 주요 증상이 있다고 분석한다.
대표 증상은 ‘패배는 없다’는 무오류의 확신이다. 집단사고에 빠진 집단은 명백한 위험을 무시하고 엄청난 리스크도 기꺼이 감수한다. 한국 의사들은 면허정지 통보와 강제수사에도 불굴의 승리를 믿는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20년 의대 정원 증원 시도 당시 정부를 무릎 꿇린 경험은 이들을 도취시켰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도덕적 환상’도 주요 증상이다. 집단사고에 빠지면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며 이후 윤리적 결과는 무시한다. 의사들은 환자를 내팽개치고 병원을 비운 집단사직을 ‘비폭력·무저항·자발적 포기 운동’이라고 윤색한다. 자신들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으며, ‘악마화’되고 있다고도 한다.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작가가 한나 아렌트와 에밀 졸라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의사들은 지금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저항하는 중이고, 졸라처럼 탄압받는 ‘유대인 드레퓌스’ 편에 서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들은 의료 정책에 대한 찬반을 선악의 충돌로 이해하며, 자신들은 당연히 선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사고의 다른 증상으로는 집단결정을 무조건 합리화하고 외부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공유하며, 소수 반대의견은 무시하는 만장일치 경향 등이 있다. 의료계는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에는 눈 감으면서 미래엔 저출산으로 의사 부족이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와 대학이 자신들에게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의료계 전체가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현장을 아직 지키는 전공의는 의사 전체를 배신한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들은 조롱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집단사고의 생생한 새 실패 사례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모든 진단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한국 의사들의 집단사직은 집단사고로도 기어이 성공할 수 있다는 예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다시 이기더라도 그 승리는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킨 잔인한 승리일 것이다. 의사들이 담보로 잡은 것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수술이 시급한 암 환자, 소아병동의 부모는 지금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사들이 승리 뒤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더라도 그때의 의사는 심신을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수지타산에 약삭빠른 의료 기술자나 의료 자영업자에 가까울 것이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