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다. 혼란스러워한다. 배신감을 느낀다. 서러워한다. 주어의 자리에 인간이 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동사들이다. 그러나 동물과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간이 언어로 표현해온 그 모든 세세한 감정들을 동물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동물을 먹지 않은 지 어느덧 오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생명의 시체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든 인간의 얼굴에는 표정이 묻어 있다. 어떤 근육을 자주 써 왔는지에 따라 얼굴의 생김새가 정해진다. 자주 웃었는지, 화를 냈는지, 깊은 고민을 많이 했는지 등 한 사람이 보낸 시간의 역사는 얼굴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면 어떤 인상을 갖게 된다. 아기 때는 대체로 비슷해 보이는 인상이라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달라진다는 것은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겪어온 경험이 신체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개와 함께 며칠의 시간을 보내며 개 역시 인간처럼 숱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책하며 만나는 동네의 개들 역시 자세히 보면 모두 서로 다른 인상을 갖고 있다. 개들 역시 느끼는 감정과 경험에 따라 모두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 일치율이 99.4%에 이른다. 조직과 장기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경우 인간과 돼지는 95% 유사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동물들도 느낀다. 우리가 먹는 고기였던 동물들 역시 자신의 얼굴과 몸에 감정을 누적해 왔을 것이다.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는, 한때 동물의 몸이었던 살덩이를 먹는 일이 이제는 정말 내키지 않는 것 같다.
개는 지금 내 옆에서 바흐의 평균율을 듣고 있다. 몹시 평온하고 차분한 얼굴이다. 바흐의 음악을 듣는 나 역시 어떤 평화로움을 느낀다. 다른 종(種)과의 이러한 연결은 정말이지 신비하고 아름답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