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반대했던 ‘PA간호사’ 합법화… 압박 수위 높이는 정부

입력 2024-03-08 04:06
최희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희망터에서 ‘의사 진료거부 해법과 총선 의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윤웅 기자

정부가 의사 대신 불법 논란 속에 의료 업무를 담당하던 PA(진료 지원)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 그동안 ‘그림자 간호사’로 불렸던 PA 간호사에 대한 법적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의사 집단행동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1200억원대 예비비 지출을 의결한 데 이어 월 1882억원의 건강보험 재정까지 투입하기로 했다.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공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 따르면 PA 간호사들이 담당하던 업무 가운데 의료법 위반 소지가 컸던 업무들이 대거 포함됐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PA 간호사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료 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제도적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술 과정에서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묶는 매듭 작업은 PA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모두 의사로부터 위임받아 실시할 수 있다. 다만 대리 수술을 하는 방식으로 집도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 진단서 작성이나 처방 등 기록 과정에서 PA 간호사가 초안을 작성한 뒤 의사가 최종 승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술동의서나 검사·시술 동의서 초안 작성도 PA 간호사 업무에 포함됐다. 기존에도 PA 간호사가 일부 담당하던 업무였지만 의료법 위반 소지가 컸던 업무들이었다. 전문의약품을 아예 간호사가 처방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중환자 관리 업무에서는 PA 간호사 업무가 일부 제한된다. 기관 삽관을 하거나 빼는 등의 처치는 PA 간호사와 일반 간호사가 할 수 없고, 전문 간호사만 담당할 수 있게 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L-튜브(비위관·콧줄) 삽관은 PA 간호사도 가능하다.

임상병리사의 업무 범위와 모호했던 ‘혈액 검체 채취’ 업무도 간호사의 업무로 위임할 수 있게 했다.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전문 간호사와 PA 간호사들은 평상시에도 이 업무를 많이 했는데, 현장에서 혼란이 있었다”며 “이번에 간호사들도 할 수 있는 업무로 분류된 것”이라고 말했다.

위임 가능 업무 예시는 보건복지부 지침상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이 ‘간호사 업무 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의료기관 내에서 업무 범위를 설정할 때 다양한 진료과 소속 인력이 참여해 교수들끼리 동료 검토가 이뤄지고, 가이드라인을 참조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간호사가 할 수 없는 업무도 명확히 규정했다.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명시적으로 금지된 프로포폴 수면 마취나 사망 진단 등이다.

현장에서는 의료진 공백 탓에 간호사들이 의사로부터 가능한 범위 외 업무를 강요받고 있다는 신고도 계속되고 있다. 앞서 대한간호협회는 ‘사망 진단’까지 강요받은 간호사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임 과장은 “대법원 판례에서 사망 진단은 간호사에게 위임하면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라고 봤기 때문에 법에 따른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중대본은 전날 1285억원 예비비를 의결한 데 이어 한시적으로 월 1882억원 규모의 건강보험을 투입하기로 했다. 중증환자를 적극 진료한 기관에 대해 사후 보상하고, 경증 환자를 2차 병원으로 회송한 경우 지급하는 보상을 추가 인상하기로 했다.

김유나 이경원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