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약물 투여… 간호사 역할 넓힌다

입력 2024-03-08 04:07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병동 입구에 7일 '병동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동을 축소 운영하거나 남은 직원들에게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병원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도 8일부터 응급상황 시 심폐소생술이나 약물 투여가 가능해진다.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의료 공백이 커지자 의사들이 독점해온 진료 업무를 간호사에게 맡겨 환자 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의사 반대로 현행법상 ‘불법’에 내몰렸던 ‘PA(진료 지원) 간호사’ 양성화에도 정부가 속도를 내면서 의료 현장에서 ‘의사 기득권’ 허물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8일부터 시행한다고 7일 밝혔다. 전병왕 중대본 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애로사항이 있었던 98개 업무 범위를 정리해 진료 지원이 가능한 업무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기본 원칙은 각 의료기관장이 ‘간호사 업무 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간호부서장 등과 업무 범위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시범사업에 따라 일반 간호사도 응급상황 심폐소생술이나 응급 약물 투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환자 심정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슴 마사지 등 초동 조치만 담당해 왔다. 곧바로 의사를 호출해 제세동기 사용 등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최근 의료진 공백이 커지면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응급 약물이나 처방된 마취제 투여도 가능해진다. 다만 간호사가 사전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는 등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사고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17일째 이어지고 있는 7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각 반발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 간호사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의사도 (환자) 결과가 나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이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간호사 업무 범위를 확대하자 간호계는 지난해 무산된 ‘간호법’ 제정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한시적 시범사업만으로는 의료 현장 혼란을 해소할 수 없는 만큼, 결국 정부가 간호법 제정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야당 주도로 간호법이 발의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간호법은 아직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유나 이경원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