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SK하이닉스 연구원 美마이크론 전직 제동

입력 2024-03-08 04:07

SK하이닉스에서 20년간 일한 핵심 연구원이 전직금지 약정을 어기고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하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인공지능(AI) 기술 필수요소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후발주자 마이크론에 기술이 유출되면 SK하이닉스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는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A씨는 오는 7월 26일까지 마이크론과 그 계열사에 자문·노무·용역 등을 제공해선 안 된다”며 “위반 시 SK하이닉스에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01년 하이닉스에 입사해 HBM 사업 수석, HBM 디자인 부서 프로젝트 설계총괄 등으로 근무했다. 그는 2015~2021년 매년 ‘퇴직 후 2년간 동종업체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정보보호서약서를 작성했고 퇴직 무렵 전직금지 약정서 등을 썼다. 약정서에는 마이크론 등 전직금지 경쟁업체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하지만 A씨가 2022년 7월 26일 퇴사한 후 마이크론 임원으로 취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A씨를 상대로 전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A씨는 현재 마이크론 본사 임원 직급으로 재직 중이다.

법원은 “관련 업계에서 SK하이닉스의 선도적 위치 등을 종합하면 전직금지 약정으로 보호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얻은 정보가 유출되면 마이크론은 동종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동등한 사업 능력을 갖추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경쟁력을 훼손당하고 그에 대한 원상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HBM은 D램 반도체 여러 개를 수직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에 4세대 제품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등 업계 선두로 꼽힌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하면서 핵심 인력 영입전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가처분신청을 내도 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탓에 그사이 핵심기술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문제는 그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전직 부장이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그대로 베껴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세우려 한 혐의가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해 전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건수는 모두 96건이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