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의 열애 공개와 뒤이어 올라온 사과문으로 K팝 아이돌 소비문화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열성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한 K팝 시장의 어두운 그늘이 드러난 사례다.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음악이 아닌 환상을 파는 비즈니스를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리나는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달 27일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닌, 20대 여성이 연애를 했다는 사실로 사과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건 아이돌 팬덤 문화와 관련이 있다. K팝 아이돌 팬덤 문화는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아이돌마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단단한 팬덤을 구축한다. 아이돌과 팬이 심리적 유대감이 생길 수 있도록 연습생 때부터 성장 과정을 공유한다. 콘서트 외에 팬미팅 등으로 가까이 볼 기회도 만든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내 가수’와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유사 연애’ 감정이 형성된다. 아이돌과 함께 성장한다는 동료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열성적인 팬덤은 앨범뿐만 아니라 각종 굿즈 판매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반대로 아이돌 멤버의 열애설은 팬들에게 커다란 배신감으로 다가온다. 아이돌 멤버들이 열애설을 감추고, 불가피하게 인정을 하게 되면 사과를 하게 되는 것도 이런 메커니즘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 K팝 산업이 커지며 주가가 요동치는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팬덤은 아니지만 SM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한 주주들도 카리나의 열애를 악재로 받아들였다. 에스파는 올해 2분기 첫 번째 정규앨범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4세대 걸그룹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에스파 리더 카리나의 열애설은 주가를 끌어내렸다. 열애설이 터진 지난달 27일 주당 7만7900원이던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7일 주당 7만900원으로 8.9%가량 떨어졌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 산업이 이 정도로 성장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팬덤의 충성도와 열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서 자금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며 “플랫폼이 발달하고 산업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기술이 더 고도화, 자본화됐고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 사이에서 아이돌 멤버는 정신적 노동과 사생활 침해 등 비합리적인 일을 너무 많이 감당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이돌의 사적 정보를 지나치게 공개하거나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아이돌이) 스스로 사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이런 것들을 파헤치거나 소비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며 “당사자도, 팬들도 원치 않았던 사적 정보가 노출된 건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