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마케팅’에 학원가는 들썩이는데… 손 놓은 교육부

입력 2024-03-08 00:02
서울의 한 대형학원 앞에 7일 2025학년도 의학 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야간 수능 강의’ 홍보 간판이 설치돼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재수생은 물론 직장인도 의대 입시 준비를 위해 학원가를 찾고 있다. 뉴시스

“의대 가기 쉬워요! 직장인도 도전해 보세요. ○○○ 직원들도 인강(인터넷 강의) 들으며 의대 준비 중.”

한 대형 학원의 광고 문구다. 광고하는 업체 직원들도 현재 의대 준비를 하고 있다며 현혹하고 있다. 이처럼 사교육업체들이 초등학생부터 중·고교생, n수생, 이공계 대학생, 직장인까지 전방위 ‘의대 마케팅’을 펴고 있지만,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증원으로 사교육이 들썩이는 상황은 불가피하므로 결국 ‘시간이 약’이란 입장으로 읽힌다.

교육부는 7일 ‘n수생 사교육 대책’에 대해 “(의대 정원 증가에 따른) n수생 증가 여부 및 대책 논의를 위해서는 정확한 현황 파악이 중요하다”며 “올해 n수생 사교육비 조사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예산 1억원을 확보해 n수생 사교육비 조사를 어떻게 할지 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대책은 없고 올해 n수생 사교육비를 어떻게 집계할지 정책 연구를 하고 있으며, 대책은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도체 등 이공계 대학생이 의대 진학을 위해 n수에 나서는 상황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의대 진학 수요 증가로 이공계 인재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학생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의사가 많아져 의사란 직업의 매력이 줄어들 때까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입학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가 많아지는 시기를 10년 뒤로 보고 있다.

‘의대 쏠림’은 교육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범정부 대책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이 예고된 지난해부터 사교육비 증가 우려가 제기돼 왔다. 교육부 혼자 대응하기 어렵다고 학교 현장과 학원가가 들썩이는 상황을 ‘모르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직을 겸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4월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교육부 기획조정실 산하에 사교육전담 조직인 사교육대책팀(현 사교육·입시비리대응 담당관)을 신설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석 달에 한 번꼴로 교체되며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교육 대응 조직을 전체 교육 정책을 조정하는 기획조정실 산하에 둔 이유는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교 사교육의 경우 고교학점제, 고교 유형, 고교 내신성적, 수능 제도 등이 엮여 있다.

초대 사교육대책팀장은 지난해 4월 3일부터 7월 30일까지 업무를 보다 대학 입시를 담당하는 자리로 옮겼다. 이후 사교육 담당자는 3차례 더 바뀌었다. 짧게는 77일, 길게는 126일 근무했다. 사교육 전담 조직이 생기고 지난 11개월 동안 사교육 담당자 4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고작 84일이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담당자가 업무에 익숙해질 때쯤 교체를 반복하는 건 정책 우선순위에서 앞자리는 아니란 뜻”이라고 꼬집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