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보이스피싱 덜 낚였지만 많이 뜯겼다

입력 2024-03-08 04:03

지난해 2월 A씨는 ‘카드 신청이 완료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신청하지도 않은 카드 발급 소식에 A씨는 메시지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명의가 도용돼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후 검찰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들은 ‘통장이 불법 돈세탁 대포통장에 사용됐다”며 협조를 종용했다. 처벌을 걱정한 A씨는 이들의 지시에 따르다가 1억3000만원을 빼앗겼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65억원으로 전년보다 514억원(35.4%) 증가했다. 피해자 수가 10% 이상 감소했으나 1000만원 이상 고액 피해사례가 증가하면서다. 이에 따라 2022년 1100만원 수준이던 1인당 피해액은 지난해 1700만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1억원 이상을 잃은 고액 피해자가 231명에 달했다. 1년 전 136명과 비교하면 1년 새 70%가량이 늘었다. 피해금은 모두 473억원이며 1인당 피해 금액도 평균 2억원이었다. 많은 피해자가 A씨처럼 정부·기관 사칭형 사기 수법에 당했다. 전체 피해자 10명 중 4명, 피해 금액의 44%가 이에 해당했다. 1000만원 이상 고액 피해자도 전년보다 1053명(29.3%) 늘어난 4650명으로 집계됐다.

사기 유형별로는 대출빙자형 피해 금액이 692억원(35.2%)으로 가장 많았다. 저리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며 기존 대출을 상환하거나 수수료를 선입금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정부·기관 사칭형 피해 금액도 611억원(31.10%)으로, 전년(213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가족·지인 사칭 메신저 피싱은 927억원(63.9%) 규모에서 662억원(33.7%)으로 크게 감소했다.

연령별로는 50대의 피해 규모가 560억원(29%), 60대가 704억원(36.4%)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대 이하(12%)와 30대(9.7%)의 경우 1년 새 피해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회초년생인 20대 이하 피해자 대부분은 정부·기관 사칭형 사기에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생활자금 수요가 많은 30~40대는 금융회사를 사칭한 대출빙자형에 취약했다. 50대 이상은 가족 등으로 속인 메신저 피싱에 취약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인정보 제공과 자금 이체 요청은 무조건 거절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URL 주소는 절대 누르면 안 된다”며 “피해금을 송금한 경우에는 즉시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하라”고 강조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