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리운 감나무

입력 2024-03-08 04:01

친정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정확한 수령은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으니까, 나보다 오래 산 나무인 것은 확실하다. 가지가 휘늘어지게 감이 열리면, 아버지는 장대로 감을 땄다. 엄마는 생채기가 나지 않은 감을 골라 항아리에 우리고, 소금물에 감이 뜨지 않도록 커다란 돌로 눌렀다. 밍크 이불을 두른 항아리는 뜨뜻한 아랫목에서 우려졌다.

엄마는 감꼭지를 상투처럼 남겨 두고, 꼭지를 실로 감아 줄줄이 매달았다. 그러고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올해 감이 많이 열리면, 다음 해에는 감이 덜 열린다는 것이다, 그걸 ‘해거리’라고 부르는데, 나무도 쉬는 거라고 덧붙였다. 그 얘길 듣고 예사로이 보았던 감나무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산모가 산후조리를 하듯이 나무도 쉬는 시간을 갖고 제 몸을 회복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후로도 감나무는 잊은 듯 그 자리에서 자랐다. 은비늘처럼 갈라진 수피를 입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햇빛을 받으며 비바람을 견뎠다. 이후로 성인이 된 나는 고향집을 떠났다. 감나무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옅어졌다. 아버지마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고향집은 빌 때가 많았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 담 밖으로 늘어져도, 따지 않고 그대로 둔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고향집에 갔을 때 감나무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벌레가 어찌나 잎사귀를 촘촘하게 갉아 먹었는지 그물처럼 잎맥이 다 드러나 있었다. 결국 감나무는 며칠을 못 버티고 죽어버렸다.

감나무가 벌레와 폭염에 시달리는 동안 방치했다는 가책이 들었다. 이제는 감나무를 떠올리면 앙상한 추억만 남은 것 같아 마음이 스산했다. 후회는 늘 뒤늦게 도착한다. 사랑은 제때 보살피는 꾸준한 마음인 것을 알면서도 한발 늦게 깨닫는다. 그렇게 놓친 마음이 비단 고향의 감나무뿐이랴.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