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 몰래 바뀐 집주인이 중증치매… 기막힌 신종 전세사기

입력 2024-03-07 04:03

중증 치매 환자 등에게 임대인 자리를 떠넘기는 방식의 신종 전세사기 의심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바지 임대인’으로 세우는 경우는 많았지만, 정상적인 의사 판단을 할 수 없는 이들까지 악용한 전세사기 의심 사례는 이례적이다.

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에 거주 중인 임차인 A씨는 최근 느닷없이 요양보호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임대인을 간호하고 있다는 보호소 측은 “임대인이 중증 치매 환자로 현재 요양원에 있다”며 “전 임대인에게 속아 임차목적물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소유권이 넘어온 상태”라고 설명했다. A씨는 그제야 임대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존 임대인인 강모씨는 2022년 A씨와 전세계약을 진행한 직후 별도로 의사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장애인과 매매 계약을 맺었다. 강씨가 치매 환자와 매매 계약을 맺고 임차인인 A씨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이다.

경찰을 찾은 A씨는 다시 좌절했다. 경찰 수사관은 “전임 임대인인 강씨가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강씨는 치매 증상이 나타난 지인을 속여 원룸 보증금을 가로채는 등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지난해 7월 강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A씨는 아직 이전 임대인 강씨를 경찰에 고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말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진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대차계약 해지 의사를 표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임대인의 주소지가 요양원으로 돼 있어 법원에서 공시송달 자체를 기각시켰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임대인 명의를 빌려 전세사기에 악용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청년 등에게 전세사기 브로커가 50만~100만원씩을 주고 주택이나 빌라 명의를 넘기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노숙자들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전세 만기일이 도래한 부동산을 넘겨 이를 다시 깡통전세로 임대한 일당이 구속되기도 했다.

부동산 전문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최근에는 노숙자뿐 아니라 사망자를 바지 임대인으로 세우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며 “서류를 위조했거나 서류를 만들어놓고 기망 상태에서 명의만 넘긴 것으로 추측된다. 중증 치매로 의사 능력이 없다면 소유권 이전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돈이 급한 임차인 입장에선 긴 시간이 걸리는 법적 다툼 자체가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