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량으로 버티는 사과… 6월까지 계속 오른다

입력 2024-03-07 04:04
한 시민이 6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진열된 사과를 집어 들며 가격을 살피고 있다.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사과와 귤 가격이 각각 71.0%, 78.1% 급등한 영향으로 신선과실 상승률(41.2%)이 1991년 9월 이후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2%대로 떨어졌던 물가 상승률이 한 달 만에 다시 3%대로 올랐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사과, 배 등 신선 먹거리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린 탓이다.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을 풀어 가격 안정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 생활물가 부담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2%대로 떨어지며 안정화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서며 정부의 올해 목표인 2%대 정착에 제동이 걸렸다.


물가 상승의 주요인은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다. 지난달 신선식품지수는 20.0% 올랐는데 이 지수에 포함된 신선과실가격 상승률은 41.2%에 달했다. 1991년 9월의 43.9% 이후 32년5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오른 것이다. 물가 관리 대상 과실류 19개 중 귤(78.1%), 사과(71.0%) 복숭아(63.2%) 배(61.1%) 감(55.9%) 수박(51.4%) 등 6개 품목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50%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 중 사과와 귤은 가계 지출 비중이 커 물가 통계 가중치도 가장 높다.


이들 가격이 크게 오른 건 설 명절 기저효과와 함께 작황 부진·재배면적 감소로 출하량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문제는 사과와 같은 신선 과실은 대체재가 없는데, 바로 생산량을 늘릴 길도 없다는 점이다. 현재 판매되는 사과는 지난해 수확해 저장했다가 시장에 풀린 후지 품종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은 1월 이후 사과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31%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아오리 품종 등 햇사과가 나오는 건 7월이다. 그전까지는 저장량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귤은 대부분 상반기에 출하하지만 올해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0.9% 줄어든 상태라 생산량 증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내수부진으로 물가 압력이 낮다고 보는 한국은행도 농산물 등 가격이 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웅 한은 총재는 이날 물가점검회의에서 “농산물 등 생활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물가 흐름은 매끄럽기보다 울퉁불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름값도 물가 상승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여파로 국제유가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산유국 모임인 OPEC+(석유수출국기구+러시아)에서 자발적 원유 감산을 2분기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국제 유가는 오름세를 보였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 가격은 78달러를 웃돌았다. 지난 1일엔 장중 80.85달러까지 오르며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80달러를 돌파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원유 전략가인 폴 시아나는 “감산 연장 등으로 브렌트유가 2분기에 배럴당 95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의 물가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4월까지 유류세 인하 기간을 연장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600억원을 유통업체 할인 지원 등에 투입해 3~4월 사과 등 주요 먹거리 체감 가격을 최대 60%까지 낮추겠다고 밝혔다.

세종=김혜지 신준섭 기자, 김준희 신재희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