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는 왜 하는 것일까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통제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염려입니다. 하지만 삶에서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근원적 염려는 타락에서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길 작정하고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시작된 것입니다.
타락이란 말의 어감은 부정적으로 느껴집니다. 타락을 ‘독립’으로 바꿔도 만물의 주인인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기에 염려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인류가 가진 염려는 본능적이며 운명인 것이 분명합니다.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유도 모르고 까닭도 알 수 없는 고난이 갑자기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깊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삶도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만 고난이 하나님의 뜻인 것은 종종 잊습니다. 용광로를 보십시오. 고난 없이 순도 높은 쇠는 구하지 못합니다. 저자의 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렌즈를 통해 고난을 바라봤다.”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염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기도를 하길 권면합니다. 구체적인 기도란 ‘사사로운 기도’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구체적인 기도는 ‘진지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걸 볼 기회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기도는 짐을 가볍게 합니다. 저자는 막연할수록 염려가 커진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선한 것을 생각하는 것도 염려를 버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끊임없이 부정적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큰 성엔 수많은 언어의 벽돌이 쌓여있습니다. 이 성에 불평과 원망이란 부정적 벽돌로 가득 차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이와 함께 저자는 평온을 위한 4단계 훈련 ‘C.A.L.M’을 권장합니다. 1단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기’(Celebrate)입니다.(빌 4:4) 2단계는 ‘하나님의 도우심 구하기’(Ask)이며(빌 4:6) 3단계는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기’(Leave)입니다.(빌 4:6) 4단계는 ‘선한 것을 생각하기’(Meditate)입니다.(빌 4:8)
역시 맥스 루케이도임을 알게 하는 책입니다. 마음의 짐을 가진 이들에게 권합니다. 잔잔하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