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슈퍼 화요일’(16개 지역 동시 경선)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행보를 막는 주요 걸림돌이 제거됐다. 투표용지에서 트럼프 이름을 제외하려는 조치가 원천 차단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리턴 매치도 사실상 확정됐다. 트럼프는 “미국을 통합할 중요한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의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을 이날 만장일치로 뒤집었다. 연방대법원은 “주 정부가 공직을 보유하거나 보유하려 시도하는 사람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지만, 연방 공직과 관련해 이를 집행할 권한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주별로 다른 결정이 나오면 거대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반란(의회 난입 사태)에 가담했는지는 판단하지 않고 자격 적격성에 대한 법률적 판단만 내렸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대법관 5명은 별도 의견에서 연방 공직 출마 자격 박탈 여부를 연방의회 입법으로만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란 가담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금지할 방법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만 이들도 트럼프의 공직 후보 유지 결정에는 찬성했다.
앞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가 ‘대선 사기’ 주장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해 2021년 1월 6일 의회에 난입하도록 한 것을 반란 가담 행위라고 보고 콜로라도주 경선 투표용지에서 그의 이름을 빼라고 판결했다. 헌법을 지지하기로 맹세한 공직자가 모반이나 반란에 가담할 경우 다시 공직을 맡지 못한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 3항을 적용했다. 이에 공화당은 “대통령은 해당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항소했다.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트럼프의 출마 자격을 박탈한 다른 주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당장 메인주가 트럼프 자격 박탈 결정을 철회했다.
트럼프는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빠른 결정을 내린 연방대법원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상대가 원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경주에서 뺄 수 없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선거에서 이기려고 검사와 판사를 이용해 상대를 쫓으려 하지 말라. 사법 무기화를 중단하고 스스로 싸우라”고 촉구했다. 또 대선 전복 혐의와 관련해 면책특권 주장을 반복하며 “법원이 아닌 유권자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박빙 승부였던 2000년 대선 때 재검표 중단을 명령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긴 판결 이후 연방대법원이 대선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방대법원은 다음 달부터 대선 전복 사건과 관련한 면책특권 적용 여부 구두변론을 시작한다. 본안 재판은 공화당 경선이 마무리되는 여름쯤에나 재개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본안 사건이 9월 이전 배심원단에 회부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바이든 재선 캠프 관계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트럼프를 이기려고 계획했던 방식도 아니다”며 “우리 초점은 투표를 통해 트럼프를 물리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기면 트럼프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며 “그는 이기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취임 첫날 독재’ ‘이민자는 미국의 혈통 오염’ 등 트럼프의 극단적인 발언을 언급하며 “10년 전 내가 저런 말을 했다면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러분 모두가 (트럼프의 위협에) 무뎌진 것 같다”며 “나는 그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고, 또 그를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슈퍼 화요일 승자가 누가 될지는 뻔하다”며 바이든과 트럼프를 위협할 경쟁자는 없다고 보도했다. 다만 두 주자 모두 슈퍼 화요일에 대선후보 확정을 위한 대의원 과반 확보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오는 12일이나 19일 경선 때 바이든-트럼프 리턴 매치가 공식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