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보는 눈’… 글로벌 선점 경쟁

입력 2024-03-05 20:11
게티이미지뱅크

민간 우주 시대가 열리면서 전 세계에서 쏘아 올린 수많은 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발사체 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 스페이스X는 지난달에만 위성이나 착륙선을 실은 로켓을 10차례 발사했다. 우주항공 업계에선 스페이스X 발사체에 탑재하려는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위성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라는 말도 나온다. 위성 추적 웹사이트 ‘오비팅 나우’는 지난 1월 기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 수를 8300개 이상으로 집계했다.

저궤도 통신 위성, 지구 관측 위성 등의 시장성과 효용성이 확인되면서 각국은 위성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 같은 우주 강국에 비하면 한국의 위성 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우주 산업에서 ‘후발 주자’의 한계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선진국과의 위성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5일 “우주 강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면 더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후발주자 한계 극복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에서 제작·발사된 위성 수는 2510개로 전년 대비 35.7% 증가했다. 이 가운데 민간이 제작한 위성이 88.6%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과기정통부는 보고서에서 “스페이스X 같은 민간 기업 중심으로 저궤도 인터넷망 구축을 위한 다수의 위성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위성산업협회(SI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위성 산업 규모는 2810억 달러(약 374조4000억원)다.

‘우주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저궤도 위성통신은 200~1000㎞의 궤도에 소형 위성을 쏘아 올려 전 세계에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여러 대의 저궤도 통신위성을 통해 항공기, 선박, 기차, 차량, 도심항공교통(UAM) 등에 안테나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공중, 해상, 오지에서 안정적인 통신을 구현할 수 있다. 비교적 낮은 궤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전파가 도달할 수 있고, 전파 지연 시간도 짧다. 특히 전쟁 등 비상사태로 지상 통신이 끊겼을 때 저궤도 위성통신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측에 저궤도 위성통신 네트워크 ‘스타링크’를 제공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구현을 위해 모두 1만2000개의 통신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9월 프랑스 위성통신 업체 유텔셋과 영국 업체 원웹의 합병으로 출범한 유텔셋원웹은 634개의 저궤도 통신위성을 발사했다. 원웹은 세계 최초로 저궤도 통신위성을 쏘아 올렸다.

한국이 저궤도 통신위성을 자체 개발해 발사한 사례는 아직 없다.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스페이스X나 유텔셋원웹이 구축한 통신망을 빌려 써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 중에선 한화시스템이 2021년 원웹에 3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3450억원) 규모의 투자를 했다. 양사는 최근 위성 제작과 저궤도 통신 서비스 개발에 협업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11월 원웹과 국내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개시를 위한 유통·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KT의 위성사업 자회사인 KT SAT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를 도입해 선박 등에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를 공급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위성통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 약 4800억원을 투입하는 ‘저궤도 위성통신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지구 관측 위성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 민간 관측 위성인 ‘소형 합성개구레이다(SAR) 위성’을 발사했다. SAR 위성은 지상이나 해양으로 레이다 전파를 쏜 뒤 굴곡면에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를 합성해 지형도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레이다를 사용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영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국내 위성 개발 기업 쎄트렉아이는 초고해상도 지구 관측 위성인 ‘스페이스아이-T’를 내년 초 스페이스X 로켓에 실어 발사할 계획이다. 한국 최초의 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한 연구진이 설립한 업체인 쎄트렉아이는 2005년부터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 위성 시스템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국가안보 직결된 위성 산업

SAR 기술은 군사 정찰 위성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대한 전천후 영상 정보를 수집하고, 핵이나 대량살상무기(WMD) 등의 위협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식이다. 방위사업청은 내달 군사 정찰 위성 2호를 미국 플로리다 공군 기지에서 쏘아 올릴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군사 정찰 위성 2호 개발에는 한화시스템 등 민간 기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광학(EO)·적외선(IR) 촬영 장비를 탑재한 군사 정찰 위성 1호는 지난해 12월 발사된 바 있다.

한국 군은 내년까지 SAR 위성 4기와 EO·IR 장비 탑재 위성 1기 등 모두 5기의 고해상도 군사 정찰 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해 궤도에 안착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만리경 1호가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펜타곤) 등을 촬영했다고 주장했지만,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위성에 대해 “일을 하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항공우주 업계 관계자들은 위성 제작 및 발사체 개발 등 한국의 우주 기술에 대해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선 민간 주도로 기술 경쟁을 하는 ‘뉴 스페이스’도 아직 도래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뒤늦게 위성 산업에 뛰어든 한국이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뿐 아니라 긴밀한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우주 항공 기술이 세계 7위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미국 중국 등 앞선 국가들과 차이가 크게 난다”며 “우주 관련 예산이나 인력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후발 주자인 것 치고는 기술력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이라며 “기반 기술 없이 위성을 제작하고 누리호 등 발사체 발사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5월 문을 여는 우주항공청이 우주 기술 개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