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에게 ‘메타버스’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트리거 버튼이다. 삶을 사이버 세계에 옮겨놓는다는 상상력은 게임사가 열렬히 바라 마지않는 지향점이지만 지난 수년간 그런 세계를 구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상과 같은 사이버 세계 구현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메타버스 세계를 영화로 그린 ‘레디 플레이어 원’ ‘프리 가이’가 세계적으로 흥행한 건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서 높은 수준의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말이다. 아마 일상을 초월한 상상력의 공간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메타버스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상화폐다. 근래 분위기는 좋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본격적인 제도권 진입과 함께 기관 투자가 시작되며 관련 업계가 활황을 맞이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기업들의 눈치 보기는 수년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과 테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국가와 단체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군자금을 조달해왔다. 미국 법원은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 각종 불법 거래를 방조한 혐의로 43억 달러(약 5조7000억원)의 철퇴를 내렸다. 창업자인 창펑 자오는 감옥행이 유력하다.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는 랜섬웨어를 이용해 비트코인 다량을 탈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연유로 눈치를 보던 기업들은 ETF 승인을 기점으로 하나 둘 가상화폐를 사업 포트폴리오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실제 거래소와 채굴 기업, 가상화폐 재단에 큰손들의 과감한 투자가 감행되고 있는 걸 요근래 확인할 수 있다.
게임사들의 곁눈질도 이미 시작됐다. 상당수 게임사들이 가상화폐를 곁들인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제 거품이 걷히고 붓기가 빠졌으니 정말로 사업성을 따져 볼만한 ‘본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최근 크래프톤과 네이버의 합작사 오버데어는 미국 최대 스테이블 코인 USDC 발행사인 서클과 손을 잡았다. 카카오게임즈 블록체인 자회사 메타보라는 일본 최대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 오아시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외에도 넷마블, 위메이드, 컴투스, 네오위즈 등이 세계 유력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내 게임사들은 가상화폐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크게 실패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높은 기대를 받았던 프로젝트가 희망퇴직, 서비스 중단의 결말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실패는 ‘종말’보다는 ‘시기상조’라고 평가할 만하다. 과열된 가상화폐 시장에서 정돈되지 못한 사업 추진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게 컸다. 굳은살이 박힌 메타버스 내지는 가상화폐 사업은 2.0 시대를 맞이했다. 블록체인을 곁들인 게임 생태계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캐릭터와 아이템을 돌려주고 싶다는 게임사들의 약속이 지켜지는 때가 머지않아 올 거란 예감이 든다. 지난 실패의 경험을 반추하며 차근히 스탭을 밟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