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 인근. ‘일방적인 정책추진 국민건강 위협한다’는 내용의 슬로건을 어깨에 두른 의료계 관계자들이 여의도공원 바깥 인도를 가득 채웠다. 일부 참석자는 빨간 띠를 묶은 오른팔을 흔들며 ‘의대 증원 결사반대’ 구호를 외쳤다. 참석자들 머리 위로 각 지역 의사회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의대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전국 각지에서 온 의사들이 모였다. 집회에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추산 4만명(경찰 추산 1만2000명)의 의료계 관계자가 참석했다. 경찰은 50대 기동대 3500여명을 배치했다.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는 의사가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정부가 의사의 노력을 무시하고 오히려 탄압하려 든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결의문에서 “정부는 의료비 폭증을 불러올 수 있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고, 의학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집회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참석한 의대생이 많이 보였다. 한림대 의대 본과 학생 A씨는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본과 친구들끼리 다 같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왔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온 의대생들은 ‘의대 정원 증원 원점 재검토’라는 흰 글씨가 적힌 검은 마스크를 쓰고 줄지어 집회 행렬 속으로 들어갔다. 몇몇 학생은 학교 이름이 적힌 학과 점퍼를 입고 왔으나 공원을 지나는 시민들이 학교 이름을 지적하자 롱패딩으로 바꿔 입기도 했다.
앞서 의사들이 제약업체 직원들을 집회에 강제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현장에선 제약업체와 의료서비스 직원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암 환자 보호서비스 회사 직원이라고 밝힌 20대 여성 B씨는 의사들에게 관련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B씨는 “업무를 위해서는 의사 인맥 형성이 필수”라며 “휴일이지만 의사들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서너 명씩 무리를 지은 여성도 “의료진은 아니고 관련 업체 직원”이라며 “간접적으로 의료진과 관련 있어서 집회에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시민들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유방암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70대 여성 C씨는 “시민 생명을 볼모로 잡는 가장 수준 낮은 행위”라며 “집에 불이 났는데 소방관이 파업해 진압을 못 한다고 하면 본인 집이라도 의사들이 수긍할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짜리 딸과 여의도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온 남성 D씨도 지난주 딸의 팔꿈치 봉합 수술로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3시간 대기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녹색정의당도 의협 집회가 시작되기 전 여의도 인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의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