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1)씨는 횟집에 갈 때면 매번 주문 전 직원에게 “4명인데 ‘대’자를 먹으면 충분하냐”는 질문을 한다. 대부분의 횟집은 사이즈가 ‘대·중·소’로만 표기돼있어 번거롭더라도 직접 물어봐야만 양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3일 “시세변동이 큰 어종은 가격이 ‘싯가’로만 쓰여있기도 한데, 가격과 양 둘 중 하나라도 명확하게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달리 수산물은 식당에서 중량을 표기해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답답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다. 현재 대부분의 횟집들은 메뉴를 ‘1~2인·3~4인’ ‘소·중·대’와 같은 식으로 구분해놓고 있지만, 이 역시도 가게마다 기준이 다르다.
회의 정확한 무게를 써놓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에는 회를 비롯한 수산물과 오리·닭 등의 중량 표기에 대한 규정이 없다. 2013년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불고기·갈비 등 식육의 경우에 한해서만 메뉴판에 100g당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조항이 마련됐다.
횟집들이 자체적인 중량 기준을 정했더라도 굳이 메뉴판에 쓰지는 않는다.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김모씨의 횟집에도 회의 무게는 쓰여 있지 않다. 김씨는 “가게를 운영하려면 당연히 무게를 정해놓아야 하지만, 메뉴판에 써버리면 물가가 변할 때마다 다시 고쳐야 하지 않냐”고 했다.
하지만 다른 품목에 비해 수산물은 중량을 정해놓기가 특별히 어렵다고 보기도 힘들다. 아가미 등 먹을 수 없는 부위를 제외한 무게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중량 기준으로 판다고 해서 신선도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시세 변동이 있는 건 돼지·소고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수산시장에선 메뉴판에 사이즈별로 무게를 병기해놓는 경우가 많다. 차덕호 노량진수산시장상인회장은 “모듬회의 경우 여러 어종을 정해진 양만큼 넣기 때문에 중량 표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식당에선 중량 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육의 경우 합리적 선택을 위해 충분한 가격 정보가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중량 표기를 의무화한 만큼 수산물 또한 소비자의 요구가 있다면 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중량 표기를 강제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면 그로 인해 처벌을 받아야하는 식당도 생기게 마련인데, 소비자들의 요구가 표면화하지 않는다면 의무 규정을 만들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적으로 중량 표기를 강제하지 않더라도 횟집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식당 문화를 바꿔가는 방법도 있다. 오리자조금관리위원회는 2020년 ‘오리고기 중량단위 판매 촉진 캠페인’을 펼쳤다. 오리고기는 통상 ‘마리’ 단위로 파는데, 기준이 불분명한 탓에 소비자들이 오리고기가 비싸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는 것이다. 현재는 적지 않은 오리고기 식당이 중량 단위로 판매하고 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