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인 사랑방 된 교회… 적응부터 생활 안정까지 도와

입력 2024-03-05 03:05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귀농은 농사나 축산업에 종사하기 위해 이주하는 걸 말하고 귀촌은 도시에서 농어산촌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걸 뜻한다.

바람직한 귀농·귀촌은 모두에게 유익하다. 도시보다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고 있는 농어산촌에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하면 지역소멸을 피할 수 있다. 도시인들도 평소 꿈꾸던 귀농·귀촌에 성공하면 전원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젖어 있는 이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원주민과 갈등을 빚다 다시 짐을 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복잡한 귀농·귀촌 현장에서 해결사가 된 이들이 있다. 바로 목회자들이다. 이들은 적응부터 생활 안정까지 귀농·귀촌의 길잡이가 되고 있고 소멸 위기에 놓인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목회와 귀농·귀촌 지원, 지역 살리기 등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다.

상주, 농촌 마을에 분 새바람

경북 상주 낙동신상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지난해 12월 랩으로 찬양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교회 제공

지난달 29일 찾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상1리는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비가 내리던 날 마을 초입에 있는 낙동신상교회(김정하 목사)에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인근 교회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윷놀이를 하고 있어서다.

김정하(53) 목사는 “교회가 늘 이렇게 시끌시끌하다”면서 “귀농·귀촌을 도우며 교회가 마을 사랑방이 된 것 같다”며 반색했다. 김 목사는 ‘교회의 비전’보다 ‘지역의 요청’에 응답하며 마을 목회를 해왔다. 2015년 예장귀농귀촌상담소 상주·낙동 지소를 세운 것도 마을목회자로 살며 주민의 일원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상담소를 열기 직전 불교 신자이던 당시 이장이 “마을에서 최근 어르신 4분이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5년만 지나면 마을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목사님이 마을을 좀 살려달라고 했었다. 귀농·귀촌에 집중하게 된 계기”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시작한 귀농·귀촌 운동은 그동안 든든한 뿌리를 내렸다. 2013년 183명이던 신상1리 주민이 2022년 조사에서는 189명으로 늘었다. 이 중 11명이 14세 이하 다음세대다. 존폐를 염려하던 마을이 감소세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선 건 마을에 신바람을 불어넣은 결과로 낙동면에서 유일한 인구 반등 사례로 꼽힌다.

요즘도 상담소에는 귀농·귀촌을 문의하는 이들의 전화가 이어진다.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김 목사는 교회와 지자체 등과 협력해 그동안 여러 채의 집을 마련했다. 귀농·귀촌을 원하는 이들이 1년 동안 살며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보금자리다. 교회는 이 마을에 새 터전을 마련한 이들과 주민을 잇는 구심점이다. 낯선 농촌 마을로 이사 온 이들은 교회에서 기존 주민을 만나 공동체를 이루며 점차 주민이 된다.

김 목사는 “전국적으로 귀농·귀촌인 중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원주민과의 관계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우리 마을은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결국 주민이 되고 안착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낙동신상교회 재적 교인이 70명이나 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 해외에 살던 한인들이 마을에 정착하기도 한다.

김 목사는 지난해 경상북도가 주최한 ‘행복농촌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우수활동가로 선정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영남신학대 특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지역살림과 마을목회’ 강의도 한다. 그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정해진 순서로 피할 길이 없다”면서 “당장 인구를 늘리자는 접근보다 마을 공동체를 살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게 더욱 시급한 과제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 마을은 세대 간 간극을 좁혀 공동체성을 강화하면서 새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청송 귀농·귀촌의 대부는 목사

청송삼의교회 교인들이 경북 청송으로 귀농한 한 가정의 사과 수확을 돕는 모습. 교회 제공

경북 청송삼의교회 남해길(58) 목사는 2012년 부임 직후 농촌의 변화에 집중했다. 당시 청송에 100가구 남짓한 귀농·귀촌인이 모여드는 걸 보고 사역 방향을 틀었다. 이후 농업기술센터가 만든 귀농·귀촌 교육과정에 입소해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그런 뒤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청송 귀농·귀촌 고민센터’를 설립했다. 고민센터는 청송군에 귀농·귀촌하려는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소멸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은 그의 별명은 ‘청송 귀농인의 대부’로 ‘귀농 매뉴얼북’도 펴내면서 귀농·귀촌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남 목사는 “부임했을 때 교인이 9명이었는데 지금은 30명까지 성장해 교회 창립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장로도 세웠다”면서 “마을을 살리면서 교회 부흥을 이끌었고 귀농·귀촌 상담을 통해 그동안 1000명 이상 상담하며 길잡이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 이장이 되는 게 새로운 꿈인데 이를 통해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더욱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남 목사도 주민 속으로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귀농·귀촌 운동이나 마을 목회 같은 사역을 꿈꾸는 목회자들은 무엇보다 주민이 돼야 사역의 길이 열리고 결국 지역도 살릴 수 있다”면서 “주변인으로 마을을 살리는 건 결국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상주=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