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한국 등 동아시아는 그동안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점유율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동아시아=반도체 공급망’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3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 중 대만 TSMC의 점유율은 59%, 삼성전자는 11%였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신냉전’ 시기 안보 갈등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대만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불안정성이 지정학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전쟁 위기를 해소하지 못한 탓에 전체 파운드리 산업 안정성도 떨어진다고 본다.
이에 반도체 공급망을 보다 안정적인 지역으로 옮기기 위한 국가 대항전이 치열하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파운드리 신흥 강국으로 성장한다는 계획 아래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대에 나섰다. 선봉장으로 인텔을 내세웠다.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 인텔에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집중 육성해 파운드리 세계 2위 타이틀을 한국으로부터 빼앗겠다는 심산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인텔 파운드리는 지정학적 위험에 직면하지 않은 기업을 원하는 전 세계 비즈니스 및 정부 고객들에게 (인텔 파운드리가) 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은 TSMC 생산공장 유치를 통해 파운드리 거점으로 부상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반도체 생산시설을 새로 짓는 기업에 최대 절반까지 건설비를 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다. 그 결과 일본은 지난달 구마모토현에 TSMC의 생산공장 1곳을 완공했다. 일본은 제1공장 투자비 1조3000억엔(약 11조5667억원) 중 4760억엔(4조2352억원)을 지원했다. 올해 말에는 TSMC 제2공장을 착공해 2027년 말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제3, 4의 공장도 유치할 방침이다.
파운드리 강국 대만은 지정학적 위기를 오히려 적극 활용 중이다. 대만은 TSMC의 성장이 곧 안보 위기를 극복할 열쇠라고 여긴다. 미국과 일본을 생산 거점으로 삼아 안보 방패로 활용하겠다는 의중이다. 대만 자체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도 들어갔다.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데 대만 행정원은 2027년까지 1000억 대만 달러(약 4조2310억원)를 투입한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춰 한국 역시 지정학적 불안을 극복하는 육성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TSMC에 파운드리 점유율이 쏠려있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하는 게 하나의 방법으로 거론된다. 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생산력에 한계가 있는 TSMC를 피해 빠르게 반도체를 공급할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국을 해법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