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가요? 아들인가요?… 32주 전에도 태아 성별 알 수 있다

입력 2024-02-2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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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태아 성별을 묻고, 남아일 경우 의사가 “파란 옷 준비하세요”라고 답해주는 식의 선문답이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앞으로 부모가 임신 주수에 관계없이 태아 성별을 문의하고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임신 32주 전까지 의료인이 부모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즉시 무효가 됐다.

헌재는 “부모가 태아 성별을 알려고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 등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며 “(해당 조항은)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태아 성별을 알고 싶은 부모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한다는 취지다.

성별 고지 금지는 남아 선호에 따른 선별 출산 경향과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헌재는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고지를 금지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음 해 임신 32주 후 고지가 가능하다는 법안이 마련됐다. 헌재는 여기서 더 나아가 ‘32주’ 기준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남아선호사상이 쇠퇴하는 등 시대적 변화가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조항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또 보건복지부 발표 조사에 따르면 성별 감별이 가능한 최소 주수인 16주 이전에 전체 낙태 중 97.7%가 이뤄졌다. 헌재는 “성별과 낙태 사이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현재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 의식이 상당히 자리잡았다”며 “임신 32주 이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낙태 전 단계로 취급해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당 조항과 관련해 지난 10년간 기소 사례가 한 건도 없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다만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은애 김형두 재판관은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며 국회에 개선 입법 시한을 줘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이들은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부모도 자녀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완전 무효보다는 현행 기준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 등은 “낙태죄 조항 효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성별 고지 제한이 사라지면 성별 선호에 따른 자녀 계획이 인공임신중절 이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