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외교 현장에서 한국어 통역을 도맡은 이연향(67) 미 국무부 통역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년 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비현실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국장은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한미경제연구소(KEI) 초청 대담에서 2018년 6월 트럼프와 김정은이 처음 마주한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비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며 “북·미 관계 개선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국무부 근무를 결심했지만, 북·미 정상이 실제로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통역은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무부에서 한국어 통역관으로 일했다. 20대 시절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방송사 PD를 희망했지만 당시 ‘성 장벽’에 막혀 원서도 내지 못했다. 1989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해 통역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국무부 최초의 소수인종 출신 통역국장을 맡고 있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트럼프를 거쳐 현직인 조 바이든까지 21세기 미국 정상의 한반도 외교 현장에 이 국장이 있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22년 10월 국무부 홍보 영상에 함께 출연한 이 국장을 “우리 외교통역팀의 필수”라고 소개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국장도 북·미 정상이 마주앉은 자리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 국장은 “내가 북한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북측에서도 내 한국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쉽게 말하고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단문을 사용하는 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회의보다도 긴장감이 높았다. 오랫동안 외교통역으로 활동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차분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조하지는 않았다”고 떠올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