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국경 문제로 바이든 ‘궁지’… 경선서 아랍계 반발 확인

입력 2024-02-29 04:04
미국 미시간주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 투표 운동을 주도한 활동가 라일라 엘라베드가 27일(현지시간) 디어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미시간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책에 항의해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 표를 던진 민주당 유권자가 수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 지지층인 진보층과 아랍계 유권자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또 조지아주에서는 불법이민자가 여대생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의 국경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불법이민자 문제가 바이든 재선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프라이머리에서 예상대로 압승했다. 그러나 득표율은 이전 경선과 비교해 크게 낮은 80% 수준에 그쳤다. 바이든 표를 잠식한 것은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지지층 일각의 분노였다. 가자지구 민간인 사망자 급증을 비판하며 ‘즉각 휴전’을 요구해온 진보계열과 아랍계 유권자들이 대거 ‘지지 후보 없음’ 의사를 밝혔다.


항의 투표를 주도한 ‘리슨 투 미시간’ 측은 성명에서 “우리 운동이 엄청난 승리를 거뒀다.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항의 표가 나왔다”며 “수만명의 민주당원이 가자지구 전쟁으로 바이든 재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적 경합주인 미시간주는 아랍계 유권자 비중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아랍계의 분노 투표가 전국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베네수엘라 국적의 불법이민자 호세 이바라(26)가 지난 22일 조지아주 오거스타대 간호학과 재학생 레이큰 호프 라일리(22)를 살해한 사건도 바이든 대통령을 옥죄고 있다. 이바라가 불법 월경으로 붙잡혔다가 풀려났고, 이후 수차례 다른 범죄를 저질렀지만 추방되지 않아 살인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27일 공개된 법원 문서에 따르면 이바라는 조깅 중이던 라일리를 둔기로 때려 두개골을 파열시켰고, 시신을 유기했다. 이바라는 2022년 9월 미국-멕시코 국경을 불법으로 넘었다. 이후 국경순찰대에 구금됐지만 후속 조치 진행 과정에 석방됐다. 지난해 8월 무면허 운전 등 혐의로 뉴욕에서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바라는 지난해 10월 조지아주의 한 월마트에서 200달러 상당의 의류와 식품을 훔친 혐의로 소환장을 받았지만, 법정에 출두하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이번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이민자 혐오 발언과 맞물리며 국경 봉쇄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6일 이바라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재선 시 불법이민자들의 대규모 추방을 약속했다. 또 “최악의 갱단원, 살인자, 마약상, 테러리스트, 정신병자들이 미국으로 오고 있다”며 “바이든이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갤럽 조사(지난 1~20일 성인 1016명 대상)에서 응답자 28%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민을 꼽았다. 인플레이션(11%)이나 빈곤·굶주림·노숙(6%)을 압도했다. 갤럽 조사에서 이민 문제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힌 건 2019년 7월(27%) 이후 처음이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미시간주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하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