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중재 목소리 내도… 꿈쩍 않는 의·정

입력 2024-02-26 04:05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 회의 및 행진행사’를 연 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의료 공백이 커지자 의대 교수 등이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단체가 주장하는 증원 규모는 ‘2000 대 0’으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데다 양측 이견을 조율할 만큼 대표성을 띠는 중재자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다.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25일 소셜미디어(SNS)에 “의대 입학조정 및 필수의료체계 유지와 관련한 제반 사항들을 정부가 저희(교수)와 함께 협의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앞서 정 위원장의 요청으로 지난 2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면담이 성사됐지만 갈등 상황을 조속히 해결하자는 공감대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도 “정부뿐만 아니라 의사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강원대와 경북대, 부산대 등 지역 국립대와 서울대 등 10개 대학 교수회장으로 구성된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거국련)도 “정부는 책임 있는 의료단체와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하고, 2000명 증원 원칙을 완화해 증원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 교수들이 나서는 이유는 현재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단체 양측은 증원 규모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고 맞섰다. 대통령실은 이날도 ‘2000명’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결국 증원 규모를 두고 협상을 해야 중재가 이뤄지는데, 정부와 의협이 이 규모를 두고 협상할 여지는 없다고 맞서는 상황에서 다른 ‘당근책’들로는 중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며 중재를 언급하자 강하게 반박했다. 김수경 대변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의대 증원을 두고 의사들이 환자 목숨을 볼모로 집단 사직서를 내거나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계를 내는 등 극단적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이 중재에 나설 만한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제자들이 먼저 나선 상황에서 무슨 중재를 한다는 거냐”고 꼬집었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내부에서도 “누가 대표성을 줬느냐”며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복지부 역시 법정 논의 기구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2000명 증원’을 의결한 만큼 규모 자체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 차관은 이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각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정책결정을 하는 것인데, 본인들(의사단체)한테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집단행동을 시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증원 규모 외에도 필수의료 지원책과 전공의 처우 개선 등 다양한 쟁점들까지 함께 논의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이 때문에 결국 정부가 당사자인 대전협과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현 전공의 사직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전협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대전협이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나 이경원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