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유령’에서 제발트가 “하지만 저는 체계적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 말하자면 개가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꼴과 같은 방식입니다. 코가 이끄는 대로 다니는 개를 보면 좌표를 설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개는 찾던 걸 반드시 찾아요”라고 이야기한 부분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출간된 산문집 ‘시차 노트’ 북 토크에서 사회자 김리윤 시인이 내 글에 대해 했던 말과 거의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시차 노트’는 두 개의 단어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진 일종의 글쓰기 실험이었는데, 그는 시차 노트에 수록된 산문들이 개 산책에 출발점과 반환점이 있지만 명확한 목적지가 없는 것처럼 마음이 가는 것에 시간이 고이게 두는 방식의 글이라고 설명했다.
개가 산책하듯 목적지 없이 쓰이는 글이라니,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제발트처럼 나 역시 글을 쓸 때 체계적인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체계란 글을 쓰기 전에 글의 내용을 얼마간 미리 정해두는 일인데, 나에게 글쓰기의 재미는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문장을 나아가도록 내버려두고, 체계라는 것이 와해될 때까지 혹은 체계 비슷한 것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새롭게 발생할 때까지 밀고 나가는 일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문장들은 개의 산책처럼 좌표를 설정할 수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된다.
어제는 실제로 개 산책을 했다. 인왕산 둘레길을 걷는 동안 개는 실제로 이리저리 오가며 산책을 즐겼다. 목적 없는 기쁨을 누리는 개의 산책 시간을 함께하며, 목적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 역시도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좌표 없이 오가며, 원대한 목적이 없더라도 살아가는 매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