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양보 없는 의·정… 필수의료 붕괴 놓고도 평행선 대치

입력 2024-02-24 04:03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보호자들이 23일 경남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로비를 서성이고 있다. 벽에 설치된 대형모니터에는 ‘외래, 입원, 수술 등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는 안내문이 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가 빚고 있는 갈등의 표면적 이유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다. 그 이면에는 필수의료 붕괴, 지역의료 공백이라는 심각한 ‘고질병’이 자리한다. 정부는 이걸 해결하려면 절대적인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본다. 반면 의료계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 정책과 현실 간 괴리 등을 내세우며 반박하고 있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자리를 지키면서 협의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강하게 비판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23일 열린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사사건건’의 특집 ‘의대 증원 논란의 본질을 묻다’ 토론회에서도 평행선을 달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외과 등 비인기 필수과목의 비수도권 지원율은 지난 2014년 71.8%에서 지난해 45.5%로 26.3% 포인트나 줄었다. 수도권에서는 같은 기간 91.0%에서 71.2%로 19.8% 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의대 증원과 동시에 필수 과로의 유인을 늘리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높일 계획이다. 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책들에 대한 정부 설명이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의료계는 지속해서 힘든 노동에 대한 적은 보상, 계속되는 외래 수술에 따른 번아웃 등의 해결책을 요청했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괴리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2000명을 증원했을 경우 필수의료 기피 과에 증원을 얼마만큼 가져갈 것인지, 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 없이 인원 숫자만 발표한 것을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박 차관은 정부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필수의료 기피, 지역의료 공백에 대해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수차례 논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마련했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네 ‘빅5 병원’ 마련, 지역의료 발전기금, 지역 교육연구 기능 강화 등도 필수의료 패키지에 담았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의대 증원이 유발할 교육의 질 저하를 놓고도 상반된 시각을 노출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의대생들 실습이 중요한데 갑작스러운 증원으로 교육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박 차관은 “강의실과 기자재 부족 등의 문제, 의료평가 기준에 맞는지를 전문가들이 현장 실사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지금으로부터 1년 반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교수를 충원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의사 수에 대해 정책적으로 유연성을 보이면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안선영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의사들이) 자리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 정부도, 의협도 환자를 내팽개쳤다”며 “가장 피해를 본 환자에게 정부와 의협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