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그때 그 의사

입력 2024-02-23 04:06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의사가 있다. 어떤 일탈 때문에 취재 선상에 올렸던 사람이다. 당시 서울 시내 모 병원 1년차 레지던트(전공의)였다. A씨라고 하자. 그가 학창시절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배경엔 2000년 의약분업 사태가 있었다.

고교생 때 A씨는 의약분업 사태를 “ 의사들이 파업으로 환자를 인질 삼아 정부에 이긴 사례”라며 높이 평가했다. 의사는 그렇게 강력한 집단이면서 ‘이과계에서 가장 전망 있는 직업’이고, 개업의 평균 소득이 그때 기준으로 월 700만원이 넘는 데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상류층 직업’이라는 점 등을 A씨는 의사를 꿈꾸는 이유로 들었다.

그는 명문 의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드나들었는데 이때 모 의대를 ‘최하위 의대’라며 깎아내렸고 또 다른 몇몇 의대를 ‘초초초쓰레기 돌팔이 의대’로 싸잡았다. 그가 진학을 희망한 대학은 A의대, B의대, C공대 순이었다. 정작 수능에선 자신이 ‘돌팔이를 배출하는 쓰레기’라고 했던 의대에 원서를 넣을 만큼의 점수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의대를 접어두고 서울권 2개 공대에 지원했다. 아무 곳이나 붙으면 등록만 해놓고 의대를 목표로 재수할 생각이었는데 C공대도 떨어지고 말았다.

이듬해 그는 A의대엔 못 갔지만 B의대에 합격하며 어쨌든 자신이 원했던 의사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숙원을 풀어서인지, 철이 들어서인지 히스테릭한 언행은 모래 위로 이어지다 도중에 뚝 끊긴 발자국처럼 사라졌다. 우월감을 만끽하느라 남을 무시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몇 년 뒤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고 무사히 졸업했다.

내가 A씨의 흑역사를 들춰보게 된 건 그가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막내 레지던트로 근무할 때였다. 그는 어느 날 20대 여성 외래환자의 차트에 적힌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따로 기록해뒀다가 사적으로 연락했다. 의료 윤리는 물론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여자에게 의사 신분을 밝히며 “그쪽이 마음에 들어 연락했다”고 했다.

A씨는 카페나 식당 같은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차 안에서 만나길 원했다. 사실상 초면인 여자에게 “신체접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너희 집에 가고 싶다” “아침에 네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같은 말을 했다. 여자가 그의 온라인 메신저 인사말에 적힌, 암호 같은 알파벳들로 검색했더니 제3의 여자가 등장했다. 여자친구가 있었단 말인가. 신체접촉 문제로 헤어졌다는 여자친구일 수도 있었다. 여자는 제3의 여자에게 전화해 A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제 남편”이라고 대답했다.

A씨는 결혼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상태였다. 의사라는 자칭 ‘고귀한 신분’을 이용해 여자 환자에게 치근대며 바람이나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명백한 잘못이었지만 피해 여성과 상의 끝에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젊은 의사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A씨 아내의 간곡한 호소도 참작했다.

10여 년이 지났다. 구사일생한 A씨는 현재 개업의로서 어엿한 전문의 노릇을 하고 있다. 나는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의대에 갔든, 살면서 어떤 허튼짓을 했든 얼마든지 좋은 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되길 바랐다.

다행히 그는 성실한 의사, 충실한 가장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의사들이 마음에도 없는 사직원을 치켜들고 환자를 볼모로 오만하게 집단행동에 나설 때마다 A씨가 의사가 된 계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