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t당 수십달러인 배출권, 한국서만 7달러?

입력 2024-02-22 04:04
연합뉴스

정부의 탄소 배출권 매각 수입이 올해 들어서도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유독 한국에서만 배출권 가격 침체가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4년 들어 2차례 진행된 탄소 배출권 경매에서 발생한 KAU23 종목의 매각 수입은 총 30억원에 그쳤다. 낙찰 가격은 1t당 8200~9050원 수준에서 형성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장이 애초에 초과 공급 상태이다 보니 경매 물량 자체를 다소 축소해서 진행한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배출권은 기업들의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정부는 기업에 탄소배출권을 유·무상으로 나눠주고, 할당량 이상으로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 기업은 경매에 입찰해 남는 배출권을 사야 한다. 유상할당된 배출권을 경매할 때 발생하는 수입은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매각 수입이 매년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연도별 배출권 매각 수입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는 목표(4009억원) 대비 수입(852억원) 달성률이 21.3%에 머물렀다. 매각 수입을 재원으로 쓰는 기후대응기금도 덩달아 주춤하고 있다. 올해 기후대응기금 예산은 2조3918억원으로 지난해(2조4867억원)보다 줄어들었다. 배출권 수입 목표가 2897억원으로 후퇴한 탓이다.

배출권 가격 침체는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진다. SK증권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가격은 최근 경기 침체 여파로 1t당 60유로(약 8만6000원) 아래까지 떨어졌지만 2020년 초에 비하면 여전히 3배가량 높다. 미국과 중국은 근래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탄소배출권은 지난달 43.5달러(약 5만8000원)로 처음 40달러대에 진입했다. 중국의 배출권 시세는 지난해 1t당 80위안(약 1만50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70위안대를 유지 중이다. 반면 한국은 2020년 한때 1t당 4만원을 돌파했던 배출권 가격이 지난해 1t당 1만원 아래를 전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배출권 이월 제한을 완화하고 거래 참여자를 늘리는 방향의 시장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시장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관측되지 않는 상태다. 유상할당 비율이 10%에 그치는 점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다 보니 기업의 매입 수요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 부문은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배출권 대부분을 무상할당해 실질 유상할당 비율이 0.48%에 불과하다. 플랜 H 기후제안은 “근본적으로 배출허용 총량과 유상할당 비율을 강화해서 배출권 수요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