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범 몰려 고문 끝에 실명… 인권침해 인정

입력 2024-02-22 04:06

1980년대 이윤상군 유괴살해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불법구금하고 고문한 사건에 대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20일 열린 제73차 전체위원회에서 피해자 이상출(68)씨가 신청한 진실규명 요청 사건에 대해 이렇게 결정하고 국가(경찰청)가 이씨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군 유괴사건은 1980년 11월에 발생했다. 마포구 경서중 1학년생인 이군(당시 13세)이 외출한 뒤 유괴됐지만 사건 발생 석 달이 지나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현상금 1000만원을 걸고 범인을 공개수배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윤상이가 살면 네 놈도 살 것이고 윤상이가 죽으면 네 놈도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은 사건이 장기화하던 중 1981년 9월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다. 경찰은 이씨를 여관방에 불법구금해 고문했고, 이씨는 후유증으로 한쪽 눈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별건수사를 통해 이씨를 공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이씨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는 경찰이 구속영장 발부 등 법적 근거 없이 이씨를 불법구금하고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경찰의 별건 구속수사 또한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을 명백하게 위배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군을 유괴한 진범은 이군 학교의 체육교사 주영형으로 1981년 11월 체포됐다. 이 사건은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와 영화 ‘밀양’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