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대형병원의 중추 인력인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고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수술·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왕규창(70·사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2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를 안 보는 의사는 의미가 없다.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2000명 증원에 대해) 설득이 안 되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 원장은 구체적으로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서 ①편향된 자료의 선택 ②의학교육 과정의 졸속 조사 ③관련 단체와 형식적 소통 등 3가지 문제점을 짚었다. 다음은 왕 원장과의 일문일답.
-전공의들이 왜 떠나나.
“2000명 증원 근거가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국책기관 등 3개 보고서를 들지만, 각 기관이 어떤 조건을 갖고 그 숫자를 산출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설득이 안 되고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젊은 의사들이 이 길(떠나는)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의사를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니 전공의 관점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한없이 일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봉사해야 하나’ 생각할 수밖에 없다.”
-편향된 자료 선택은 무엇을 말하나.
“정부는 의사 수 부족 근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를 든다. 한국은 2.6명, OECD 평균은 3.7명으로 적은 게 맞다. 하지만 우리와 의료체계가 비슷한 일본(2.6명) 미국(2.7명)과 비슷하고 한국의 의사 수 증가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다. 의료 접근성이나 가성비(의료의 질)도 좋은 편이다.”
의학한림원은 첫해에 300~500명 규모 증원을 시작하고 그 효과를 지속 모니터링하는 기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조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의대 증원 수요 현장조사에 문제가 있었나.
“19일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소속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장이 성명을 냈다. 지난해 말 교육부 주관의 증원 수요조사 당시 각 의대(대학원)의 교육 여건에 비춰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했던 점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했다. 실제 40개대가 정원을 동시에 몇 배로 늘리면 기초·임상교수나 시설 등 의학 교육의 질 확보가 가능하겠나. 소그룹, 실습강의가 중요한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렵다. 교육부 조사 때 전체를 보지 않고 각 대학 상황에 맞춰 그것도 의대학장보다는 대학 총장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정부의 필수·지역의료 패키지는.
“필수의료 기피의 본질은 의사 부족보다 해당 분야의 낮은 수가와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과잉처벌,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에서 기인한다. 정부가 2028년까지 10조원을 들여 해결한다고 했지만 예산 확보 등 구체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