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이른바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를 추진하는 가운데 ‘소비자 보호’라는 기존 법 취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사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단통법 폐지가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폐지로 인해 소비자 차별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정부가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정부가 속도전에 집중할 경우 소비자 권익이 저하하는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일 ‘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 논의, 시장과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과 쟁점’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단통법이 폐지되면 유통점의 추가지원금 제한과 요금제별 지원율 규제, 이동통신사의 지원금 공시 및 준수 의무가 없어진다고 분석했다. 개별 소비자에게 차별적인 지원금 지원도 가능해진다. 소비자로서는 지원금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대안 없이 단통법 폐지를 위해 속도전을 펼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단통법 도입 이전에 문제로 여겨졌던 지원금 불균형, 높은 탐색비용, 고가요금제 집중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가계통신비 부담완화, 소비자 차별·피해 발생, 요금·품질 경쟁 저하 가능성 등 여러 쟁점을 정부가 깊이 있게 분석해야 폐지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
우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할 사후 규제가 필요하다. 지원금을 공시하지 않고 지원금 경쟁을 활성화하면 정보에 취약한 소비자는 지원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복잡한 상품 구조로 인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계약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 이를 막을 별도의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심 판매 강제 금지, 이동통신사의 판매점 관리 의무 등 단통법에 담긴 소비자 보호 내용도 유지할 방안도 필요하다. 지원금 경쟁으로 알뜰폰 사업자와 소형 유통점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막을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 박소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단통법 폐지 시 (단통법 도입 전의) 문제가 재발할 우려가 있어 정부는 주요 쟁점을 분석하고 섬세하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업계도 시장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변화인 만큼 소비자 관점에서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소비자가 단말기 구매 관련 정보 격차를 해소할 방안이 뚜렷하게 마련되지 않은 만큼 섣부른 단통법 폐지는 오히려 소비자 간 격차만 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통신비를 줄여 부담을 줄이려는 정부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파급력에 대한 충분한 판단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향후 제도 정비 과정에서 소비자 권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