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부 갈등에 깨진 개혁신당… 점점 좁아지는 제3지대

입력 2024-02-21 04:01
개혁신당 이낙연 공동대표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준석 공동대표. 이병주 기자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이 이전투구를 벌였던 지난 대선은 우리 정치를 크게 후퇴시켰다. 이후 국회에선 정치가 아니라 선거의 연장전이 벌어져 왔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상황에서 거야의 입법 권력과 정부·여당의 행정 권력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민생에 꼭 필요한 입법은 양측의 극한 대결에 번번이 무산됐고, 진영 논리가 얽힌 법안은 일방 처리와 거부권의 정면 대치 속에 무산됐다. 결국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정치판을 국민은 2년간 지켜봐야 했다.

이번 총선은 이렇게 무용한 정치에 돌파구를 만들어낼 흔치 않은 기회다. 양당 정치의 폐단을 끝내는 방법은 양당 구도를 깨버리는 것이기에 이 당도 저 당도 아닌 제3지대로 유권자의 시선이 향했다. 그것을 담아내겠다고 모여든 이들이 ‘빅텐트’를 치는 듯하더니, 불과 열흘 만에 갈라섰다. 개혁신당 이낙연 공동대표가 20일 합당 철회를 선언하며 독자노선을 택했다. 이준석 공동대표와 선거 지휘권을 놓고 다투다 그리됐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당권 싸움에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만약 총선에서 유권자가 제3의 정당에 캐스팅보트를 준다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명확하다. 갈등의 조정. 양당의 대결 정치와 진영 논리를 조율하고 중재하고 때로는 무력화해서 정치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라고 표를 주는 것인데, 개혁신당은 내부의 갈등조차 조정하지 못했다. 애초에 정체성이 달랐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보수·진보 정당에서 이탈하고도 좌파니 우파니 하는 낡은 잣대에 여전히 얽매여 있음을, 제3의 정치세력을 자처할 준비가 안 돼 있음을 방증할 뿐이다.

한국 정치의 토양은 제3 정당이 자리 잡기에 척박하다고들 하지만, 개혁신당 파동은 토양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당층이 30%를 오르내리고, 2030 젊은 유권자들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지금의 토양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정치 실험에 유리하다. 이대로 날려버리기엔 이 기회가 너무 아깝다. 제3지대를 택한 이들에게 아직 새 정치의 의지가 남아 있다면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개혁신당의 패착은 이합집산을 통한 세력화를 제3지대 성공의 관건으로 착각한 데 있었다. 유권자가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모였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말하느냐다. 양당 정치의 폐단을 넘어서려면 양당과 다른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꺼내놓을 실력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