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외로운 사람들에게

입력 2024-02-21 03:04

엊그제 모 신문에서 외로움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글은 ‘우리는 왜 갈수록 외로워지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무인 매장이 늘어난다면서 예전의 24시 편의점에서는 한밤중에도 말을 나눌 사람이 있었던 것을 그리워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었지만 무관심과 냉랭함이라는 더 크고 두꺼운 복면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글을 쓰신 분은 예전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거나 가방을 들어주던 때를 떠올리면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가는 요즘 모습과 비교했습니다. 거기에 식당 키오스크와 음식 배달용 로봇을 언급했습니다.

한자의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이유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보시기에 심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은 보시기에 심히 좋은 창조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드심으로 아담과 서로 기대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외로움은 어디서 왔을까요. 외로움은 인간이 가진 죄성에서 기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순간 그들은 죄인이 됐고 거기서 끊어지는 외로움이 왔습니다. 아담은 열매를 먹은 이유를 하나님과 하와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게 아담의 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만 더 한다면 ‘당신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마치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어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아담은 하와로부터 끊어졌습니다. 하와가 열매를 줬기 때문에 먹었다는 핑계였습니다. 마치 요즘 가정에서 ‘다 당신 때문이야’라고 소리치며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가는 사람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이혼 서류가 오고 가겠지요. 이처럼 하나님에게서 끊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끊어진 존재는 한없이 외롭습니다. 철저한 외톨이입니다.

인생은 외롭지 않으려는 처절한 싸움입니다.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됐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악한 사람도 자기 자식은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남긴 흔적입니다.

이래저래 외로운 인생이 외로움을 이길 길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일러줍니다. 이 한마디야말로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는 이를 살릴 최고의 명약입니다. 외롭다면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무릎 꿇는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라 사랑의 샘을 파는 몸짓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 샘에서 사랑이 솟아날 것입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