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정원 감축 논의도 숨은 변수
현 고3에겐 ‘유례없는 불확실성’
제도 변화로 혼란 땐 사교육 위력
정보력이 당락 좌우하는 불공정
밀린 숙제하듯 밀어붙이는 정부
부작용 최소화 위한 고민도 필요
‘예측 가능한 대학 입시’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사교육비와 밀접합니다. 대입 제도가 출렁일 때마다 사교육 부담은 껑충껑충 뛰어왔죠. 입시가 불안해지면 사교육은 즉각 움직이지만 공교육은 한두 템포 늦습니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아 학교 현장이 안정될 때쯤 입시가 또 다시 흔들립니다.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현 고3에겐 ‘유례없는 불확실성’
제도 변화로 혼란 땐 사교육 위력
정보력이 당락 좌우하는 불공정
밀린 숙제하듯 밀어붙이는 정부
부작용 최소화 위한 고민도 필요
이는 정보 격차와 맞물려 있습니다. 현행 대입 제도는 참 복잡합니다. 수시와 정시로 나뉘어 있는 듯하지만 ‘수시 납치’ ‘수능 최저학력 기준’ 등으로 두 제도는 엮여 있습니다. 정시 합격 가능성을 판단한 뒤에야 제대로된 수시 지원 전략이 도출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대학별로, 모집단위별로 강조하는 포인트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대입 전략은 대학 간판을 바꿀 정도로 중요합니다.
입시는 기본적으로 누군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제로섬 게임’이죠. 전략을 잘 세우는 쪽이 유리한 게임입니다. 누가 전략을 잘 세울 수 있을까요. 정보량에 좌우되기 쉽습니다. 공교육이 입시 변화에 한두 템포 늦는 상황에서 사교육비 지출 규모가 큰 변수가 됩니다. 자금력에 따른 정보력 그리고 오류가 적은 전략 수립이 ‘그것도 실력’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불편하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입시에서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불공정성을 끌어올리는 행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도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험생들이 안정적으로 입시를 치를 수 있도록 법령에 규정된 사전 예고제를 운영하고 있죠. 정치에 휘둘려 늘 지켜지지는 않지만 제도는 있습니다. 고등교육법을 보면, 교육부가 정하는 기본적인 대입 방향은 4년 전에 정하도록 합니다. 대입에서 변화를 주려면 적어도 중2에서 중3으로 올라갈 때 제도를 확정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이나 평가 비중, 출제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년 6개월 전에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이 발표됩니다. 대학들이 학생을 뽑을 때 적용할 가이드라인입니다. 정부가 앞서 발표한 대입 기본 방향을 토대로 합니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고1 1학기가 끝날 무렵에 나옵니다. 대학별로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대입전형시행계획’ 발표 시기는 고2 4월입니다. 대학별 모집단위가 확정되므로 이때부터 수험생들은 저마다 지망하는 전공과 학과에서 얼마나 뽑는지 보고 공부 방향과 지원 전략의 얼개를 작성합니다.
대입전형시행계획이 나오고 고3 올라가기 전 단계는 수험생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고1은 주로 공통과목을 공부합니다. 고2 시기부터 학교생활기록부를 본격적으로 채워나갑니다. 고3은 1학기 내용만 반영될 뿐 아니라 입시 일정도 숨 가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습니다. 고2 시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올해 고3의 처지는 다릅니다. 지망하는 전공이나 학과에서 얼마나 뽑을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예측 가능성 ‘0’에 가깝게 보는 입시 전문가도 있습니다. 의대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 5038명이 된다는 게 가장 강력한 변화입니다. 의대는 ‘대학 서열 피라미드’ 최상단에 있기 때문에 결코 극소수 최상위권의 변화가 아닙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시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 세 대학의 입시 결과는 연쇄적으로 다른 대학에 영향을 줍니다.
의대 증원 변수만으로도 버거운데 ‘무전공 입학’도 대폭 늘어날 예정입니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무기 삼아 ‘무전공 입학 25%’를 대학에 사실상 강제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모집단위가 바뀔 겁니다. 지역의 거점 국립대 등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겁니다. 여기에 더해 교대 정원 감축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교대의 입학 정원 15~20%를 감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인기가 주춤하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간과하기 어려운 변화죠.
올해처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입시는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올해 고3은 새 학기가 됐는데도 희망 학과가 어찌 바뀔지 모릅니다. 이 상태에서 4~5월 중간고사를 치릅니다. 정부와 대학들은 의대와 무전공, 교대 등 모집단위 변동 사항을 5월 말 발표할 예정입니다. 곧바로 수시 지원의 가늠자가 되는 6월 모의평가를 보게 됩니다. n수생은 도대체 얼마나 유입될지, 이들이 정시 합격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정시 합격선은 또 수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 따라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 버린 ‘문과 침공’ 현상이 무전공 확대 흐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불확실성을 더해줍니다. 지금껏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성일 겁니다.
국민적 요구가 큰 의대 입학 정원 확대부터 대학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무전공 입학, 학생 수 감소에 대응한 교대 정원 감축까지, 정부는 마치 밀린 숙제하듯 거침 없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변화라면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작용을 줄이는 고민은 필요해 보입니다. 예측 가능한 입시도 공정한 입시만큼 가볍게 여길 가치가 아닙니다. 의료 개혁, 대학 개혁을 위해 올해 고3 한 학년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지금 같은 태도는 곤란합니다.
윤석열정부 들어 교육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해졌다는 학부모 여론조사 결과를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지난해 7~8월 전국 19세 이상 4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교육 여론조사’를 보면 고교생 학부모 64.4%가 ‘일관성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