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72)씨는 최근 남편의 위암 수술 뒤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유씨의 남편은 배에 삽입한 관을 통해 경관식을 공급받고 있는데, 갑자기 역류 현상이 발생했다. 유씨와 남편은 병원 3곳을 전전했지만 모두 치료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유씨 남편은 서울 신촌의 한 병원에서 12시간을 대기하고 나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유씨는 18일 “우리나라에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일부 전공의가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것에 대해 “환자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의사를 늘려야 할 텐데 의사들은 왜 자신의 밥그릇만 지키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나부터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가 의사들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전공의 전원이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하면서 환자들의 불편과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당장 수술이 예정됐던 환자들의 수술이 미뤄지거나, 입원 일자가 연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병원들은 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의 공백으로 의료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모(45)씨는 다음 주 서울 아산병원에서 대퇴골 수술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미뤄졌다. 병원에선 이씨에게 ‘의사 파업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몰라 환자의 수술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의 공지를 했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이씨는 “얼른 수술을 받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급한 대로 다른 병원도 알아봤지만 다 거절당했다. 이렇게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강력하게 의사들 파업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산을 앞둔 산모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다음 달 4일 출산 예정인 이모(36)씨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씨는 “의사 선생님들만 믿고 있는데 혹시라도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라며 “국민 목숨을 담보로 이기적인 행보를 보이는 의사들 모습이 속상하고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달 중순 출산 예정인 김모(33)씨도 “아기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의사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며 “아무리 그래도 사람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데, 직업윤리란 게 있는지 묻고 싶다. 이기주의만 남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의료기관·복지시설 종사자로 구성된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의사들의 진료 중단을 국민이 막아야 한다며 국민촛불행동을 제안했다.
간호계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간호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들이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법에 규정된 간호사 업무 이외의 일을 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가현 정신영 나경연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