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브로드컴에 인수된 글로벌 서버 가상화 소프트웨어(SW) 1위 기업 VM웨어가 최근 재계약 대상 고객사에게 5배까지 인상된 SW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표준’으로 인정받아 온 VM웨어 제품의 급격한 가격 인상에 국내 기업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경쟁당국이 브로드컴과 VM웨어의 기업결합 심사 시 SW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VM웨어와 가상화 SW 사용 계약을 맺었던 국내 기업들은 VM웨어의 새로운 정책에 따라 재계약 시 적게는 30%에서 5배 인상된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VM웨어가 모든 서비스를 구독제로 전환한 여파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VM웨어 영구 라이선스를 구매하고 이후 유지보수 비용를 지불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달마다 구독료를 내야 한다. 이에 기존 SW 제품의 5년간 사용료와 1년치 구독료가 비슷해진 곳도 나왔다. 서버 가상화는 하나의 물리적인 서버로 여러 가상 서버를 생성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VM웨어는 글로벌 서버 가상화 SW 시장 점유율이 41%에 이른다. 주력 상품인 ‘브이스피어’는 업계 표준으로 통한다. 이커머스 기업뿐 아니라 삼성, LG 계열사, 시중은행 등 주요 기업도 이 제품을 이용한다.
VM웨어의 공격적 가격 인상은 브로드컴과의 합병 직후 이뤄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브로드컴이 VM웨어 주식 전부를 취득하는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3위인 브로드컴은 인수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발톱을 드러냈다. 브로드컴은 과거에도 CA테크놀로지스, 시만텍 인수 직후에 가격을 대폭 인상한 전적이 있다. 특히 VM웨어는 구독제 전환에 더해 기존에 제공되던 50개 이상의 제품 라인업을 대폭 줄이고 이를 2개의 패키지 상품으로 통합해 판매하기로 했다. 단품 제품을 이용하던 기업은 앞으로 필요 없는 다른 솔루션까지 포함된 비싼 패키지를 구독해야 하는 셈이다.
VM웨어 SW 이용 기업들은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대체 SW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새 시스템 정착에 최소 1~2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VM웨어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그룹, LG그룹 계열사 등 대기업들도 브로드컴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산 기업의 가상화 SW 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 시 SW 시장의 혼란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결합 심사 당시 공정위는 SW 시장이 아닌 브로드컴이 지배적 사업자로 올라선 하드웨어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 업계의 우려가 나오자 공정위는 양사 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하면서 SW 시장 피해를 차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VM웨어의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 수단은 거의 없다. IT 업계 관계자는 “대체재가 없진 않지만 새 시스템 전환을 위해선 기업에 따라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