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해외 부동산 투자로 지난해 최소 1조원이 넘는 평가 손실을 기록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국내에서는 고금리에 기댄 이자 장사로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부동산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본 셈이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손실 규모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각별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상업 부동산 가격이 줄줄이 폭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위험을 집중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공실이 증가했고, 금리 상승 여파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매각이 지연 또는 불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5대 금융그룹의 해외 부동산 관련 투자와 대출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20조원이 넘었다. 가장 취약한 북미 지역 부동산에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 국내 금융사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익스포저는 55조원이 넘는다.
5대 금융그룹은 이미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장부에 반영했다. 세부 투자 내역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전문성이 의심스러워질 정도다. 수백억원을 넣었는데 수익률이 -100%에 가까운 사례도 있다. KB증권은 2014년 10월 미국 뉴저지의 한 상업용 빌딩에 179억여원을 수익증권 형태로 투자했는데 현재 평가 금액이 10억7500만원에 그쳤다. 평가 손실이 94.02%나 된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에서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49조1994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이자 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나라 밖에서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국내에선 이자 장사로 수익을 냈고, 밖으로는 실력 부족으로 손실을 본 것이다. 해외 부동산 침체는 금융사의 건전성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금융 소비자의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은행 증권사 등이 해외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펀드 등을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판매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이번 사태를 당장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긴장감을 갖고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해외 부동산 관련 대출·투자 건에 대해 정밀 실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