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병인에 의한 의료사고, 책임은?

입력 2012-02-07 10:14
간병서비스 제도화 불투명…환자·간병인 모두 고통

[쿠키 건강] 핵가족화와 여성 사회참여 증가 등으로 병원에 입원한 가족을 돌볼 사람이 없어 간병인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간병인들의 횡포에 환자와 보호자가 두 번 울고 있다. 간병인 부주의로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환자에게 막말을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조선족 등 외국인이 국내에 간병인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늘면서 원활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물론, 문화적 차이로 인해 환자나 보호자가 겪는 고통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간병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간병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나 관리 체계가 전혀 없다. 곳곳에 아무개 간병인협회와 같은 일종의 간병인 유료직업소개소가 난무하고 있다. 소개소는 병원과 간병인 파견 계약을 직접 맺고 환자와 간병인을 연결해 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환자와 간병인 간 사적 계약에 의한 고용임을 이유로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환자복지센터 양봉석 소장은 “병원에 입원하면 입원료 안에 간호관리료가 포함돼 있다”며 “간병은 본래 간호사가 다 해 주게 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 그 공백을 가족과 환자가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간병인 파견 업체와 일부 병원 간 리베이트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어렵게 마련한 간병비가 리베이트 비용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최경숙 상임이사는 “병원이 간병인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다보니 병원과 간병 파견업체 간 계약 과정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며 “간병 유료소개소의 경우 특정 병원에 간병인을 계속 제공하기 위해 5000만 원~1억 원의 리베이트를 준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환자만 힘든 게 아니다. 간병서비스가 제도화되지 못하면서 간병인은 간병인대로 인권의 사각지대 안에서 시름하고 있다. 간병인을 병원에서 직접 고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된다. 노동환경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일하다 다쳐도 본인 비용으로 치료해야 한다. 24시간, 주 6일 연속 근무라는 살인적 노동을 통해 이들이 받는 평균 일당은 6만원, 시급 2500원 정도다. 법정 최저임금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유료소개소 측에 월회비나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중간착취를 당한다.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은 간병인이 담당하는 업무 범위다. 간호사 인력 부족을 이유로 간병인은 환자의 가래 빼기, 콧줄로 미음 넣기, 소변량 체크 등 의료인이 해야 할 업무를 담당한다. 부적절한 관행은 의료사고로 이어지기도 해 문제의 심각성을 부추긴다. 공공운수노조·연맹 차승희 간병분회장은 “썩션(가래 빼기)의 경우 환자에게 가래가 있으면 그때그때 해 줘야 하지만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간병인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며 “심지어 썩션을 잘 못하는 간병인이 있으면 간호사들이 썩썬 잘하는 간병인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간병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은 탓에 환자와 간병인 모두 피해를 입고, 병원과 간병인 소개소 측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간병서비스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던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0년부터 간병서비스 제도화 작업에 뒤늦게 착수했다. 현재 제도화의 기본 틀을 짜기 위한 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이 결과는 오는 9월 쯤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기본 방안이 도출되는 것일 뿐, 본격적 제도화가 언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도화의 가장 큰 쟁점은 간병서비스를 환자들에게 급여로 제공할 것이냐 비급여로 할 것이냐의 문제다. 복지부는 간병서비스를 급여로 시행할 경우 최대 2조 32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급여로 시행할 경우에는 환자 부담만 늘린 채 병원들에게는 또 다른 수익구조를 만들어 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결국 엄청난 소요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와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내느냐가 제도화의 관건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이다. 정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정권교체기를 앞두고 복지부가 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도화 이전에, 환자가 안심하고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기관이 최소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장치도 시급하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간병 피해자 구제 창구에 관한 검토나 구체적 방안은 아직 마련할 계획이 없고 제도화를 위한 단계적 추진이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은석 기자 0192407994@kukimedia.co.kr